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정사에 나이 기록 없음).
사망 233년 — 사망 연도 불명. 안문태수 재임 12년째 병으로 죽었다(견초전: 會病卒. 招在郡十二年). 233년은 계산용 가정값이다. (추정)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9년 | 낙양 | (스승 악은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보냄) | 기록 |
| 190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1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2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3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4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5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6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7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8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199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200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201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202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203년 | 업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204년 | 유성 | 원상의 군량 감독 → 조조에게 귀의 → 유성에 사신 | 기록 |
| 205년 | 업 | 군모연 | 추정 |
| 206년 | 업 | 군모연 | 추정 |
| 207년 | 업 | 호오환교위 → 업 | 기록 |
| 221년 | 창평 | 호선비교위(창평 주둔) | 기록 |
| 222년 | 광무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3년 | 광무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4년 | 광무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5년 | 광무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6년 | 광무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7년 | 광무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8년 | 마읍 · 다른 후보: 광무 | 안문태수(전예 구원) | 기록 |
| 233년 | 광무 | 안문태수(병사) | 추정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8년 | 기타·재야 | (안평 관진 출신, 악은에게 배움, 연대 불명) | 불명 |
| 189년 | 기타·재야 | (스승 악은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보냄) | 기록 |
| 190~203년 | 원소·원씨 | 독군종사·오환돌기 겸령 | 추정 |
| 204년 | 위 | 원상의 군량 감독 → 조조에게 귀의 → 유성에 사신 | 기록 |
| 205~206년 | 위 | 군모연 | 추정 |
| 207년 | 위 | 호오환교위 → 업 | 기록 |
| 208~219년 | 위 | 중호군 → 평로교위(청·서주 군사 감독) | 불명 |
| 220년 | 위 | 평로교위 | 불명 |
| 221년 | 위 | 호선비교위(창평 주둔) | 기록 |
| 222~227년 | 위 | 우중랑장 → 안문태수 | 추정 |
| 228년 | 위 | 안문태수(전예 구원) | 기록 |
| 229~232년 | 위 | 안문태수 | 불명 |
| 233년 | 위 | 안문태수(병사) | 추정 |
스승 악은과 하묘가 낙양의 혼란으로 해를 입자 칼날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보내다 도적을 만나 눈물로 청해 풀려난다.
정사 견초전: 낙양이 어지러워 하묘와 악은이 피살되자 견초는 악은의 문인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보냈다. 도적이 관의 못을 빼려 하자 눈물로 청해 풀려났고 이로 인해 이름이 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共殯斂隱屍,送喪還歸」
조조가 원담을 치려 할 때 유성의 오환이 기병 5천을 원담에게 보내려 하자, 조조가 견초를 보내 요동 사신 한충을 눌러 꾸짖고 오환 왕을 설득해 기병을 돌려보내게 한다.
정사 견초전: 조조가 견초가 오환을 맡은 적이 있으므로 유성으로 보냈다. 요동의 공손강이 사신 한충으로 단우 인수를 주려 하자 견초가 한충의 머리를 눌러 칼을 뽑아 베려 했다. 초왕이 놀라 맨발로 안고 구했다. 견초가 이해를 설득해 모두 요동 사신을 물리치고 기병을 거두었다. 연도는 자치통감 건안 9년 서술(권64)에 맞춘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便捉忠頭頓築,拔刀欲斬之」 / 三國志 卷26 「便辭遼東之使,罷所嚴騎」
업에서 공손강이 보낸 원상의 수급이 마시에 걸리자 슬퍼하며 제사를 지내 조조가 의롭게 여긴다.
정사 견초전: 요동이 원상의 머리를 보내 마시에 걸자 견초는 이를 보고 슬퍼해 머리 아래에서 제사를 올렸다. 조조가 의롭게 여겨 무재로 천거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遼東送袁尚首,縣在馬市,招覩之悲感,設祭頭下」
문제가 즉위하자 사지절 호선비교위가 되어 창평에 주둔, 선비 소리·미가 등 10여 만 락을 귀부시킨다.
정사 견초전: 문제가 즉위하자 견초를 사지절 호선비교위로 삼아 창평에 주둔시켰다. 변방 백성과 도망자 천여 명을 은신으로 불러들였고 선비 소리·미가 등 10여 만 락이 변방에 와 복속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拜招使持節護鮮卑校尉,屯昌平」
전예가 고마읍성에서 가비능에게 포위되자 상급 관청의 금지를 무릅쓰고 스스로 표를 올려 출병해 격문으로 위세를 보이고 가비능을 크게 쳐부순다.
정사 견초전: 태화 2년 호오환교위 전예가 고마읍성에서 가비능에게 포위되어 견초에게 구원을 청했다. 병주가 법으로 막았으나 견초는 '절장이 포위되면 관례에 매일 수 없다'며 스스로 표를 올려 출병했다. 격문으로 형세를 알려 전예 군이 용기를 얻었고 오랑캐는 흩어졌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招即整勒兵馬,欲赴救豫」 / 三國志 卷26 「自表輙行」
안문태수 12년 만에 병으로 죽는다. 변경을 다스린 평가가 전예 다음이며 백성이 추모했다.
정사 견초전: 견초는 가비능 방어 계책을 상의하던 중 병으로 죽었다. 군에서 12년을 있으며 위풍이 멀리까지 떨쳤고 치변의 평가는 전예 다음이다. 연도는 정사에 없어 안문 재임 12년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6 「未及施行,會病卒。招在郡十二年,威風遠振」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8 | 기병을 이끌고 구름 북쪽에서 가비능 군을 크게 쳐부수고 선비·오환 10여 만 락을 귀속시켰다(견초전). |
| 무력 | 70 | 스승 시신을 노략하려는 도적 앞에서 눈물로 청해 풀려났고, 유성에서 요동 사신 한충의 머리를 눌러 칼을 뽑아 참하려 했다(견초전). |
| 지력 | 67 | '하북 오환의 기병은 중요하다'며 원상 편에서도 건의했고, 가비능과 제갈량의 연계를 미리 경고했다(견초전). |
| 정치 | 70 | 안문에서 개간·학교·수로 정비로 백성이 이익을 보았다. 치변 능력이 전예 다음이라 평가받았다(견초전). |
| 매력 | 70 | 죽어서도 백성이 추모했다(百姓追思之)(견초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견초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