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90년경(추정) — 생년 불명(190년경, 계산용 가정값·표시는 '추정')
사망 258년 — 태평 3년(258) 정월 수춘에서 제갈탄에게 죽임(오서 손량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53년 | 합비 신성 | 양주자사·전장군 | 기록 |
| 254년 | 합비 신성 | 양주자사·전장군 | 추정 |
| 255년 | 수춘 | 양주자사→반란 | 기록 |
| 258년 | 수춘 | 수춘 농성(제갈탄 가담)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90~252년 | 위 | (패국 초 출신, 조상의 읍인)·양주자사·전장군(연대 불명) | 불명 |
| 253년 | 위 | 양주자사·전장군 | 기록 |
| 254년 | 위 | 양주자사·전장군 | 추정 |
| 255년 | 위 | 양주자사→반란 | 기록 |
| 256~257년 | 오 | 오의 장군(투항 후, 소재 불명) | 불명 |
| 258년 | 오 | 수춘 농성(제갈탄 가담) | 기록 |
제갈각이 합비 신성을 포위하자 관구검과 함께 막고 사마부가 중군으로 구원해 제갈각이 물러난다.
정사 관구검전: 오 태부 제갈각이 합비 신성을 포위하자 관구검이 문흠과 함께 막았고 태위 사마부가 중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구원하자 제갈각이 물러났다. 신성 포위는 253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8 본 「吳太傅諸葛恪圍合肥新城儉與文欽御之太尉司馬孚督中軍東解圍恪退還」
정원 2년 정월 혜성이 나타나자 관구검과 함께 태후의 조서를 위조해 사마사를 토벌한다고 거병한다.
정사 관구검전: 문흠은 조상의 읍인으로 전공이 많았으나 노획을 부풀려 상이 허락되지 않아 원한이 컸다. 정원 2년 정월 혜성이 나타나자 관구검과 함께 태후 조서를 위조해 사마사의 죄를 열거하고 군국에 보내 거병했다. 관구검은 항에서 버티고 문흠은 밖에서 유병이 되었다.
연의: 연의 109~110회 — 연의 109~110회는 관구검·문흠의 반란을 사마사의 눈 종기와 문앙의 일기 돌격으로 극화한다.
출전: 三國志 卷28 본 「遂矯太后詔罪狀大將軍司馬景王移諸郡國舉兵反」
낙가에서 등애의 약한 군을 야습하려 했으나 날이 밝아 사마사의 대군을 보고 물러난다. 아들 문앙은 군을 두 대로 나눠 야습했다.
정사 관구검전: 사마사가 등애에게 군 1만여를 이끌고 낙가에서 약함을 보이게 했고 문흠이 모르고 야간에 습격하려 했으나 날이 밝아 대군이 성한 것을 보고 돌아갔다. 위씨춘추는 중자 문앙이 군을 둘로 나눠 야습해 대장군의 군을 놀래켰으나 문흠이 늦어 물러났다고 적었다. 사마사가 추격해 대파하자 문흠이 달아났고 관구검도 죽었다.
연의: 연의 110회 — 연의 110회는 문앙이 단기로 사마사 군을 휘젓는 장면을 길게 적는다.
출전: 三國志 卷28 본 「欽不知果夜來欲襲艾等會明見大軍兵馬盛乃引還」
패한 뒤 오로 달아나 손준·여거·유찬이 문흠을 데리고 수춘으로 진군하나 제갈탄이 이르러 성을 칠 수 없어 물러난다.
정사 제갈탄전: 손준·여거·유찬 등이 회남의 난을 듣고 문흠이 오로 간 터라 군을 이끌고 문흠과 함께 수춘에 이르렀으나 제갈탄의 군이 이미 이르러 성을 칠 수 없어 달아났다. 제갈탄이 장군 장반을 보내 추격해 유찬을 베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28 본 「吳大將孫峻呂據留贊等聞淮南亂會文欽往乃帥眾將欽徑至壽春」
제갈탄이 반란했을 때 문흠이 합류했으나 수춘 포위 중 제갈탄에게 죽임당한다.
정사 오서 손량전: 태평 3년 춘 정월 제갈탄이 문흠을 죽였고 3월 사마문왕이 수춘을 평정했다. 제갈탄의 반란 때 오가 문흠·당자·전단 등 보기 3만을 보내 호응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48 본 「三年春正月諸葛誕殺文欽三月司馬文王克壽春」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66 | 양주자사로 관구검과 함께 제갈각의 신성 포위를 막았고 정원 2년 낙가에서 야습을 시도했다(관구검전). |
| 무력 | 82 | 「驍果粗猛 數有戰功」(관구검전). 아들 문앙이 낙가에서 용력을 보였다. |
| 지력 | 50 | 전공은 있으나 노획을 부풀려 사마사에게 불만을 쌓았다(관구검전). |
| 정치 | 평가 불가 | 정치 기록은 없다(관구검전). |
| 매력 | 32 | 관구검과 정이 깊었으나 반란 실패 후 오로 달아났다(관구검전·제갈탄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문흠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