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8년 — 건안 9년(204) 17세에 경성을 지킨 기록에서 역산
사망 241년 — 적오 4년 졸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4년 | 경구 | 승열교위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8~203년 | 기타·재야 | (본성 유(兪), 백부 손하가 손책에게 성을 하사받아 손씨가 됨) | 불명 |
| 204년 | 오 | 승열교위 | 기록 |
| 205~221년 | 오 | 승열교위 | 불명 |
| 222~228년 | 오 | 광릉태수·편장군 | 불명 |
| 229~240년 | 오 | 진북장군 | 불명 |
| 241년 | 오 | 진북장군·유주목 | 불명 |
17세에 숙부 손하가 죽자 남은 무리를 수습해 경성을 수축해 손권이 시험 기습으로 확인한 뒤 승열교위로 삼는다.
정사 손소전: 손익이 해를 당하자 손하가 완릉으로 달려가 규람·대원을 꾸짖었다가 살해되었다. 17세의 손소가 손하의 남은 무리를 수습해 경성을 수축하고 누각과 기구를 정비했다. 손권이 밤에 경성 아래서 시험 삼아 공격하며 놀라게 했는데 병사들이 성에 올라 경계 격문을 전하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손권이 다음 날 손소를 보고 크게 기특히 여겨 승열교위로 삼아 손하의 부곡을 통솔하고 곡아·단도 두 현을 식읍으로 주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韶年十七,收河餘眾,繕治京城」
후에 광릉태수·편장군이 되어 오왕 때 양위장군·건덕후, 존호 칭호 후 진북장군이 된다.
정사 손소전: 후에 광릉태수·편장군이 되었고 손권이 오왕이 되자 양위장군, 건덕후로 올랐다. 변방 장수로 수십 년 있으며 병사를 잘 길러 사력을 얻었고, 척후로 먼저 동정을 알아 방비해 지거나 패하는 일이 드물어 청·서·여·패에서 귀부하는 사람이 많았고 회남 강가 둔후가 병력을 철수해 서·사·강·회 땅 수백 리가 비었다. 연도는 오왕 책봉(221~222)으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後為廣陵太守、偏將軍」
손권이 제호를 칭하자 진북장군이 된다.
정사 손소전: 손권이 존호를 칭하자 진북장군이 되었다. 10여 년 알현하지 못하다 건업에 돌아온 손권이 청·서 요충의 원근, 병마의 수, 위 장수 성명을 물으면 모두 대답했고, 다시 만난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유주목 겸임과 가절을 더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權稱尊號,為鎮北將軍」
적오 4년 졸하고 아들 손월이 이어받는다.
정사 손소전: 적오 4년 졸했고 아들 손월이 이었다. 손월은 우장군, 손월의 형 손해는 무위대장군·임성후.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1 「子越嗣」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평가 불가 | 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
| 무력 | 64 | 17세에 손하의 남은 무리를 수습해 경성을 수축하고 방비를 갖춰 손권의 시험 기습에도 끄떡없었다(손소전). |
| 지력 | 70 | 변방 장수 수십 년에 척후를 철저히 해 지고 패하는 일이 드물었고 청·서·여·패에서 귀부하는 이가 늘었다(손소전). |
| 정치 | 61 | 손권이 청·서 요충, 병마 수, 위 장수 이름을 물으면 모두 알고 답했다(손소전). |
| 매력 | 66 | 병사를 잘 길러 목숨 바쳐 싸우게 했다(손소전).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손소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