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굉(張紘)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생년 불명사망 211년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사망 211년 — 「오로 가족을 데리러 가다 길에서 병사, 60세」로만 적혀 연도 없음. 말릉 천도 건의(건안 16년) 직후로 둔 자리값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199년허창시어사기록
200년허창시어사기록
208년합비장사추정
211년건업장사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96~198년오정의교위불명
199~200년오시어사기록
201~207년오시어사불명
208년오장사추정
209~210년오장사불명
211년오장사기록

나온 사건·전투

196년 · 정의교위

손책이 단양을 칠 때 직접 진두에 서지 말라고 간한다.

정사 장굉전: 손책이 창업하자 몸을 의탁했고 표를 올려 정의교위가 되었다. 손책이 직접 진두에서 단양을 칠 때 장굉이 "주장은 책략이 나오고 삼군의 목숨이 달린 자리이니 가벼이 나서지 마시라"고 간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손책의 단양 평정(196)에 맞춘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不宜輕脫」

199년 · 시어사

손책의 사자로 표를 받들고 허도에 가서 시어사로 머문다.

정사 장굉전: 건안 4년 손책이 장굉을 보내 허궁에 표를 올리게 했고 조정에 시어사로 머물게 되었다. 소부 공융 등이 모두 친하게 지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留為侍御史」

200년 · 시어사

손책이 죽자 상중을 틈타 오를 치려는 조조를 말려 오히려 손권을 토로장군에 표청하게 한다.

정사 장굉전: 조공이 손책 사망 소식에 상중에 오를 치려 하자 장굉이 "남의 상을 틈타는 것은 옛 도리가 아니다. 이기지 못하면 원수가 되고 호의도 버리니 오히려 후하게 대하라"고 간해 조공이 따라 손권을 토로장군·회계태수에 표청했다. 이후 장굉은 회계 동부도위로 나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既非古義」

208년 · 장사

손권이 경기병으로 적진에 돌입하려 하자 주장의 일이 아니라고 간해 그만두게 하고, 이듬해 출병 계획도 중지시킨다.

정사 장굉전: 후에 손권이 장굉을 장사로 삼아 합비 정벌에 따라가게 했다. 손권이 경기병으로 적진에 뛰어들려 하자 장굉이 "비육의 용맹을 누르고 패왕의 계책을 품으라"고 간해 손권이 멈추었고, 이듬해 다시 출병하려 하자 널리 파종하고 어진 이를 쓰며 때를 기다리자고 간해 중지했다. 연도는 본문에 없고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願抑賁、育之勇」

211년 · 장사

도읍을 말릉에 두자고 건의해 손권이 따른다. 오로 가족을 데리러 가다 병으로 죽으며 유서를 남긴다.

정사 장굉전: 장굉이 도읍을 말릉에 두자고 계책을 내자 손권이 따랐다. 가족을 데리러 오로 돌아가다 길에서 병이 위독해지자 아들 장정에게 유서를 남겼고, 60세에 졸했다. 손권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연도는 오주전의 말릉 천도(건안 16년, 211) 직후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3 「紘建計宜出都秣陵」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지력83손책에게 직접 진두에 서지 말라고 간했고 조조가 손책 사후 오를 치려 하자 상중에 치는 것이 옛 도리가 아니라며 말렸다(장굉전).
정치81손권에게 도읍을 말릉에 두자는 계책을 올렸고 손권이 따랐다(장굉전).
매력69손책이 장소에 버금가게 대우했다(진수 평).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굉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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