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朱據)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오출생 194년사망 250년기록 연도 1해

생몰

출생 194년 — 적오 13년(250) 사사 때 57세로 역산

사망 250년 — 적오 13년 중서령 손홍이 위조한 조서로 사사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9년건업좌장군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194~221년기타·재야(오군 오 출신)불명
222~228년오오관랑중불명
229년오좌장군기록
230~245년오좌장군불명
246~250년오표기장군불명

나온 사건·전투

222년 · 오관랑중

황무 초 오관랑중이 되었다가 시어사로 보임되고, 선조상서 암염의 인사 숙청에 반대한다.

정사 주거전: 황무 초 오관랑중에 징소되고 시어사에 보임되었다. 선조상서 암염이 탐오한 관리를 가려내려 하자 주거는 아직 천하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공으로 과를 덮어 쓰는 편이 낫다 했으나 암염이 듣지 않다 결국 패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征拜五官郎中」

229년 · 좌장군

손권이 건업으로 도읍을 옮기며 주거를 불러 공주에게 장가들게 하고 좌장군·운양후로 삼는다.

정사 주거전: 앞서 건의교위로 호숙에 주둔했다. 황룡 원년 손권이 건업으로 도읍을 옮기며 주거를 불러 공주에게 장가들게 하고 좌장군에 임명하고 운양후에 봉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征據尚公主,拜左將軍」

238년 · 좌장군

가화 연간 대전을 주조할 때 부곡에게 줄 3만 민을 왕수가 속여 받아 가자 전교 여일이 주거를 의심해 몰아붙이지만, 전군리 유조가 사실을 밝혀 여일이 처벌된다.

정사 주거전: 가화 중 큰돈을 주조하던 때 부곡이 받을 3만 민을 기술자 왕수가 속여 받아 가자 전교 여일이 주거가 실제로 취했다고 의심했고, 주거는 죄 없이 맞아 죽은 주관자를 후하게 장사 지냈다. 여일이 이를 표로 고발했고 손권이 주거를 거듭 책망해 주거는 풀 위에 앉아 죄를 기다렸다. 수개월 뒤 유조가 왕수의 소행임을 밝혀 손권이 크게 깨달아 여일을 처벌했다. 연도는 여일 사건의 시기(적오 초)로 추정.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典校呂壹疑據實取」

246년 · 표기장군

적오 9년 표기장군이 된다.

정사 주거전: 적오 9년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遷驃騎將軍」

250년 · 표기장군

이궁 분쟁에서 태자를 끝까지 옹호하다 좌천되고, 손권의 병중에 중서령 손홍이 조서를 위조해 사사한다.

정사 주거전: 이궁이 다툴 때 주거가 태자를 옹호해 간절히 말하고 목숨을 걸고 지켰으나 신도군 승으로 좌천되었다. 도착하기 전에 중서령 손홍이 참소했고 손권이 병석에 눕자 손홍이 조서를 꾸며 사사했다. 57세. 이후 손량 때 두 아들 주웅·주손이 병권을 되찾았다가 전공주의 모함으로 죽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57 「弘為詔書追賜死,時年五十七」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평가 불가정사에 능력을 가늠할 기록이 거의 없어 낮은 근거로 둔 값
무력66모습이 좋고 근력이 있으며 변론에 능하다고 평가받았다(주거전).
지력55선조상서 암염의 숙청에 반대해 공으로 과를 덮어 쓰는 편이 낫다고 했다(주거전).
정치66하는 일이 공정해 여일의 모함에도 억울함이 드러난 뒤 손권이 「주거가 억울한데 하물며 백성은」이라 탄식했다(주거전).
매력69이궁의 다툼에서 태자를 끝까지 옹호하다 좌천되고 사사되었다(주거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주거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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