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曹叡) — 정사 삼국지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위출생 205년사망 239년기록 연도 6해

생몰

출생 205년 — 경초 3년(239) 붕어 향년 36세로 역산

사망 239년 — 경초 3년 정월 가복전에서 붕어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27년낙양황제기록
228년장안황제기록
230년낙양황제기록
234년수춘황제기록
238년낙양황제기록
239년낙양황제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5~226년기타·재야(조비의 태자, 무덕후·제공·평원왕)불명
227~228년위황제기록
229년위황제불명
230년위황제기록
231~233년위황제불명
234년위황제기록
235~237년위황제불명
238~239년위황제기록

나온 사건·전투

227년 · 황제

신성태수 맹달이 반란하자 사마의를 보내 토벌한다.

정사 명제기: 태화 원년 신성태수 맹달이 반란하자 조서로 표기장군 사마선왕을 보내 토벌하게 했고, 이듬해 정월 사마의가 신성을 쳐 맹달을 베고 머리를 전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新城太守孟達反」

228년 · 황제

제갈량이 변경을 침범해 천수·남안·안정 세 군이 호응하자 조진을 관우로 보내고 직접 장안에 행차한다.

정사 명제기: 태화 2년 촉 대장 제갈량이 변경을 침범해 천수·남안·안정 세 군의 관민이 제갈량에 호응해 반란했다. 대장군 조진에게 관우를 도독하게 하고 우장군 장합이 가정에서 제갈량을 크게 깼다. 황제는 장안에 행차했다가 4월 낙양으로 돌아왔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丁未,行幸長安」

230년 · 황제

태화 4년 대사마 조진·대장군 사마의에게 촉 정벌을 명하나 큰비로 철군한다.

정사 명제기: 태화 4년 7월 대사마 조진·대장군 사마선왕에게 촉 정벌을 명했으나 9월 큰비로 이수·낙수·황하·한수가 넘쳐 조진 등에게 군을 돌리게 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詔大司馬曹真、大將軍司馬宣王伐蜀」

234년 · 황제

청룡 2년 손권이 합비 신성을 공격하자 직접 용주를 타고 동정해 수춘에 이르자 손권이 물러난다.

정사 명제기: 청룡 2년 5월 손권이 소호구로 들어와 합비 신성으로 향하고 육의·손소는 회·면으로 들어왔다. 만총이 신성을 비우고 수춘으로 물러나자 했으나 황제가 「지리상 반드시 다투는 곳이니 신성은 못 뺏는다」며 굳게 지키게 하고 7월 용주를 타고 동정했다. 도착 수백 리 전에 손권이 달아났고 황제는 수춘에서 공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사마의가 위남에서 제갈량과 대치하다 제갈량이 죽어 촉군이 물러났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帝親御龍舟東征」

238년 · 황제

경초 2년 사마의가 공손연을 양평에서 크게 깨자 4만 병력 파견이 옳았다고 한다. 12월 병이 위독해지자 연왕 조우를 대장군에 임명했다가 4일 만에 면직하고 조상으로 바꾼다.

정사 명제기: 경초 2년 정월 태위 사마선왕에게 요동 토벌을 명하며 병 4만을 보내게 했다. 의논하던 신하들이 4만은 많아 비용을 대기 어렵다 했으나 황제는 「4천 리를 치는 일이니 병력을 써야지 비용을 헤아릴 때가 아니다」라며 4만으로 가게 했다. 사마의가 공손연을 양평에서 크게 깨 목을 서울로 보냈다. 12월 황제가 병이 나 연왕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았다가 갑신일 면직하고 무위장군 조상으로 대신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遂以四萬人行」

239년 · 황제

경초 3년 정월 사마의를 침상 곁에 불러 어린 아들을 조상과 함께 돕게 부탁하고 붕어한다.

정사 명제기: 경초 3년 정월 태위 선왕이 하내에 이르자 황제가 역마로 불러 침실에 들여 손을 잡고 「병이 심해 뒷일을 그대에게 맡긴다. 조상과 함께 어린 아들을 돕게 하라」고 하자 선왕이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 가복전에서 붕어했다. 36세. 고평릉에 장사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출전: 三國志 卷03 「時年三十六」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76제갈량의 침공을 사마의에게 맡기고 직접 합비 신성 구원에 나서 손권이 달아났다(명제기).
무력56무력 기록은 뚜렷하지 않다.
지력79손권이 신성을 칠 때 「적이 반드시 다투는 땅이니 신성을 굳게 지키면 못 빼앗을 것이다」라며 만총의 후퇴안을 물리쳤다(명제기).
정치72심판은 「옥은 천하의 성명」이라며 큰 옥사는 청송관에 직접 임해 들었고 형벌을 줄이는 조서를 여러 번 내렸다(명제기).
매력61정사 평: 침착하고 결단이 있으며 식견이 있으나 궁관 공사로 백성이 피폐했다(평).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예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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