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奥국 보고 — 반란한 俘 吉弥侯部於夜志閇 등 61인을 모두 붙잡음. 처자를 불러 모으기 위해 몸은 성 아래 머무르게 해 달라는 청을 허락함 (일본후기 日本後紀 卷26)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4)
사라고사에서 온 사라센 왕 아불라즈의 아들 아브디라만의 사절이 평화를 청하러 와 콩피에뉴에서 접견되고 아헨에 먼저 가라는 명을 받음. 3개월 억류된 뒤 돌려보내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레오 황제 사절도 달마티아 문제로 아헨에 옴 (프랑크 왕국 연대기 ARF a.817, Kurze 1895 p.145)
6월 아헨 총회에서 황제가 장남 로타리우스에게 관을 씌워 이름과 제국의 동료로 삼고 다른 두 아들은 아퀴타니아와 바이에른의 왕으로 세움. 이에 앞서 성목요일에 나무 회랑이 무너져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곧 회복함 (프랑크 왕국 연대기 ARF a.817, Kurze 1895 p.146)
슬라오미르가 케아드라구스와 왕권을 나누라는 명에 노해 아보트리트 반란을 일으키고 고도프리두스의 아들들과 동맹함. 그들의 함대가 엘베를 올라 에세스펠트 성에 이르러 슈투리아 강안을 황폐화했으나 성을 공격하다 포기하고 물러남 (프랑크 왕국 연대기 ARF a.817, Kurze 1895 p.147)
조카인 이탈리아 왕 베르나르두스가 알프스 통로를 막고 반역을 꾀한다는 소식에 황제가 대군으로 이탈리아로 서둘러 가자, 베르나르두스가 12월 카빌로눔에서 항복하고 가담자들이 모든 것을 자백함 (프랑크 왕국 연대기 ARF a.817, Kurze 1895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