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자치통감: 정사 사료. 다루는 해 기원전 403년 ~ 서기 959년, 사건 1456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등급정사
시점내부 시점
다루는 해기원전 403년 ~ 서기 959년
사건 수사건 1456건 · 지도에 놓은 1066건
저자司馬光
원제資治通鑑

지역 분포: 중국 1420 · 동남아시아 19 · 한반도 9 · 일본 7 · 몽골·초원 1

사건 목록

해장소사건원문 위치
기원전 403년洛陽주 위열왕이 진(晉)의 대부 위사·조적·한건을 처음으로 제후에 책봉함 (삼진 분립을 인정)資治通鑑 卷001 (원문 단락 #1, -403년)
기원전 403년晉陽삼가(조·한·위)가 지백이 있는 진양성을 물로 둘러 수공함 — 성이 잠기지 않은 곳이 3판(版)뿐資治通鑑 卷001 (원문 단락 #4, -403년)
기원전 389년濁澤제의 전화가 위 문후·초·위(衛)의 사람들과 탁택에서 만나 제후가 되기를 청함 — 문후가 주 왕과 제후들에게 청해 허락받음資治通鑑 卷001 (원문 단락 #32, -389년)
기원전 380년桑丘제가 연을 쳐 상구를 빼앗자 위·한·조가 제를 쳐 상구까지 이름資治通鑑 卷001 (원문 단락 #49, -380년)
기원전 379년臨淄제 강공이 후사 없이 죽어 전씨가 제나라를 완전히 차지함資治通鑑 卷001 (원문 단락 #51, -379년)
기원전 364년石門진 헌공이 삼진(三晉) 군대를 석문에서 깨고 6만을 베자 주 왕이 보불(黼黻) 예복을 하사함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89, -364년)
기원전 361년大梁위가 도읍을 안읍에서 대량으로 옮김 (여름 4월 갑인)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99, -361년)
기원전 354년邯鄲위 혜왕이 조를 쳐 한단을 포위하자 초왕이 경사를 보내 조를 구원케 함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115, -354년)
기원전 352년襄陵위가 한군을 이끌고 제후군을 양릉에서 깸 — 제가 초 경사를 보내 강화를 청하고 위 혜왕이 제·송의 포위를 모음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123, -352년)
기원전 350년咸陽상앙이 함양에 기궐과 궁정을 짓고 도읍을 옮김 — 부자·형제 동실 금지, 작은 향을 합쳐 31현 설치, 정전 폐지 등 개혁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130, -350년)
기원전 341년馬陵위 방연이 한을 치자 한이 제에 구원을 청함 — 제 위왕이 대신들과 구원 시기를 논의(전기는 일찍 구하자, 손빈은 위·한이 지치기 전에 구하면 한 대신 위를 받는 꼴이라 함)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143, -341년)
기원전 334년徐州제왕과 위왕이 서주에서 만나 서로 왕이라 칭함 — 초왕이 이를 듣고 전영에게 노함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158, -334년)
기원전 329년汾陰진이 위를 쳐 황하를 건너 분음·피씨를 취하고 초(焦)를 함락함資治通鑑 卷002 (원문 단락 #176, -329년)
기원전 318년函谷關초·조·위·한·연이 함께 진을 쳐 함곡관을 공격했으나 진군이 맞서 5국 군대가 모두 패주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05, -318년)
기원전 317년修魚진이 한군을 수어에서 깨 8만 급을 베고 한 장수 𬘡·신차를 탁택에서 사로잡자 제후들이 두려워함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06, -317년)
기원전 316년成都파·촉이 서로 쳐 진에 구원을 청하자 진 혜왕이 촉 정벌을 망설임 — 사마착은 촉을 치자, 장의는 한을 치자 함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09, -316년)
기원전 314년薊연 자지가 왕이 된 지 3년에 내란 — 장군 시피와 태자 평이 자지를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함, 제왕이 태자에게 말을 건넴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14, -314년)
기원전 312년丹陽진이 단양에서 초와 싸워 대패시켜 8만 갑사를 베고 굴개 등 70여 명을 사로잡아 한중군을 차지함 — 초가 다시 남전에서 크게 패함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21, -312년)
기원전 307년宜陽진 감무가 의양을 5개월 쳐도 못 뽑다가 진왕이 대군을 보태 6만을 베고 의양을 함락 — 한이 강화를 청함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41, -307년)
기원전 307년洛陽진 무왕이 맹열과 정(鼎)을 들다 맥이 끊겨 죽자 연에 인질로 있던 이복동생 직(소양왕)이 맞아져 즉위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42, -307년)
기원전 299년咸陽진왕이 맹상군의 현명함을 듣고 경양군을 제에 인질로 보내 청하자 맹상군이 진에 들어가 승상이 됨資治通鑑 卷003 (원문 단락 #267, -299년)
기원전 295년沙丘공자 장이 패해 주보(무령왕)에게 달아나자 공자 성·이태가 주보의 궁을 포위, 궁인들을 내보낸 뒤 주보는 먹을 것을 얻지 못함資治通鑑 卷004 (원문 단락 #288, -295년)
기원전 279년鄢진 백기가 초를 쳐 언·등·서릉을 취함資治通鑑 卷004 (원문 단락 #329, -279년)
기원전 279년澠池민지 회담 — 진왕이 조왕에게 슬(瑟)을 타게 하자 인상여가 진왕에게 부(缶)를 치라 청하고 위협해 한 번 치게 함資治通鑑 卷004 (원문 단락 #331, -279년)
기원전 279년即墨전단이 성안 사람들에게 제사를 올리게 해 새들이 내려앉게 하고 한 병졸을 '신사(神師)'로 세워 연을 속이는 계책을 폄(즉묵 방어)資治通鑑 卷004 (원문 단락 #335, -279년)
기원전 278년郢진 백기가 초를 쳐 영(郢)을 함락하고 이릉을 불사름 — 초 경양왕이 동북 진(陳)으로 천도, 진이 영을 남군으로 삼고 백기를 무안군에 봉함資治通鑑 卷004 (원문 단락 #343, -278년)
기원전 273년華陽조·위가 한 화양을 치자 한이 진에 급을 알렸으나 진왕이 구원하지 않음 — 한 상국이 진서를 보내 양후를 설득資治通鑑 卷004 (원문 단락 #351, -273년)
기원전 270년閼與진이 조 알여를 포위하자 조왕이 염파·악승·조사에게 구원 여부를 물음 — 조사가 '두 쥐가 굴에서 싸우듯 용맹한 쪽이 이긴다' 하여 군을 이끌고 구원資治通鑑 卷005 (원문 단락 #364, -270년)
기원전 260년長平진 왕흘이 상당을 쳐 함락하자 상당 백성이 조로 달아남 — 조 염파가 장평에 주둔, 4월 왕흘이 조를 쳤으나 조군이 여러 번 패함資治通鑑 卷005 (원문 단락 #386, -260년)
기원전 260년長平진왕이 조괄이 장군이 되었다는 말에 몰래 무안군 백기를 상장군으로 삼음 — 조괄이 군 편제를 바꿔 진군을 치자 백기가 거짓 패주하며 두 기병으로 협격資治通鑑 卷005 (원문 단락 #388, -260년)
기원전 258년邯鄲정월 진 왕릉이 한단을 공격했으나 불리해 병력을 더하고도 5교(校)를 잃음 — 병이 나은 백기에게 대신 가라 하자 한단은 쉽지 않다며 사양資治通鑑 卷005 (원문 단락 #394, -258년)
기원전 257년邯鄲위 공자 무기(신릉군)가 한단 아래서 진군을 크게 깨 왕흘이 포위를 풀고 달아남 — 정안평은 2만을 이끌고 조에 항복資治通鑑 卷005 (원문 단락 #401, -257년)
기원전 249년成皋진 몽오가 한을 쳐 성고·형양을 취하고 처음으로 삼천군을 둠資治通鑑 卷006 (원문 단락 #435, -249년)
기원전 247년咸陽여름 5월 병오 진왕(장양왕)이 죽고 태자 정이 즉위(13세) — 국사는 문신후 여불위에게 맡기고 중부(仲父)라 부름資治通鑑 卷006 (원문 단락 #444, -247년)
기원전 229년井陘진 왕전이 상지 병으로, 양단화가 하내 병으로 정형에서 조를 침 — 진이 곽개에게 금을 주어 이목·사마상을 모함, 이목이 죽임당하고 사마상은 파면됨資治通鑑 卷006 (원문 단락 #491, -229년)
기원전 228년邯鄲진이 한단을 함락해 조왕 천을 사로잡고 조 땅을 평정함 — 왕은 한단에 가서 모가의 원수들을 죽이고 태원·상군을 거쳐 돌아옴資治通鑑 卷006 (원문 단락 #492, -228년)
기원전 226년薊겨울 10월 왕전이 계를 함락하자 연왕과 태자가 정병을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남 — 이신이 급히 추격, 대왕 가가 연왕에게 태자 단을 죽여 바치라 권함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03, -226년)
기원전 225년大梁왕분이 위를 쳐 황하 물길을 끌어 대량을 수공함 — 3월 성이 무너지고 위왕 가가 항복해 피살, 위 멸망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05, -225년)
기원전 221년臨淄왕분이 연에서 남쪽으로 제를 공격해 임치에 들어서니 아무도 막지 못함 — 진이 제왕을 오백 리 봉지로 유인해 항복시키고 공(共)에 가둬 굶어 죽게 함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18, -221년)
기원전 219년嶧山시황이 동쪽 군현을 순행해 추역산에 올라 공덕비를 세우고, 노 유생 70인을 모아 태산 아래서 봉선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갈려 유생들을 물림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27, -219년)
기원전 218년琅邪시황이 지부에 올라 각석한 뒤 낭야로 가서 상당(上黨)을 거쳐 들어옴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33, -218년)
기원전 215년碣石시황이 갈석에 가 연인 노생에게 선문을 구하게 하고 갈석문에 각석, 북변을 순시하고 상군으로 들어옴 — 노생의 도록('진을 망칠 자는 호')에 몽염에게 30만으로 흉노를 치게 함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35, -215년)
기원전 212년咸陽후생·노생이 시황을 비방하고 달아나자 시황이 함양 유생들을 어사에게 심문시켜 금령 위반자 460여 명을 가려냄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44, -212년)
기원전 210년雲夢11월 시황이 운몽에 이르러 구의산에서 순에게 망제(望祭)하고 강을 따라 내려가 회계에서 대우를 제사, 돌아오는 길에 낭야 쪽으로 감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48, -210년)
기원전 209년會稽2세 황제가 이사와 함께 동쪽 군현을 순행해 갈석에서 바다를 따라 회계까지 가서 시황의 각석 옆에 대신들의 이름을 새기고 돌아옴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55, -209년)
기원전 209년蘄가을 7월 양성 사람 진승과 양하 사람 오광이 기(蘄)에서 기병 — 대택향에 모인 수졸 900명이 큰비로 기한을 어겨 참형 위기에 몰려 장교를 죽이고 봉기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59, -209년)
기원전 209년戲주문이 관에서 병사를 모아 수레 천 승·병졸 수십만으로 희(戲)에 진을 치자 놀란 2세가 소부 장한의 건의로 여산 도형수들을 사면해 무장시킴資治通鑑 卷007 (원문 단락 #570, -209년)
기원전 208년東阿항량이 동아에서 장한을 깨고 서쪽 정도에 이르러 진군을 다시 깸 — 항우·패공은 옹구에서 이유를 베었으나 항량이 교만해지자 송의가 간함資治通鑑 卷008 (원문 단락 #621, -208년)
기원전 207년鉅鹿거록성에서 조왕 헐과 장이가 풀려나 제후들에게 사례함 — 장이가 진여에게 구원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자 진여가 인수를 풀어 줌資治通鑑 卷008 (원문 단락 #637, -207년)
기원전 207년嶢關진군이 요관을 막자 패공이 치려 했으나 장량이 산 위에 깃발을 늘어세워 의병을 꾸미고 역이기·육가를 보내 이익으로 진 장수를 달래게 함資治通鑑 卷008 (원문 단락 #650, -207년)
기원전 206년霸上겨울 10월 패공이 패상에 이르자 진왕 자영이 흰 수레·흰 말에 목에 끈을 매고 새·부절을 봉해 지도 곁에 항복 — 패공은 죽이지 않고 관리에게 넘김資治通鑑 卷009 (원문 단락 #653, -206년)
기원전 206년鴻門패공이 100여 기로 홍문에서 항우를 만나 사죄함 — 항우는 좌사마 조무상이 이간했다고 말함(홍문연)資治通鑑 卷009 (원문 단락 #658, -206년)
기원전 206년陳倉8월 한왕이 고도로 나와 옹을 습격 — 옹왕 장한이 진창에서 맞섰으나 패해 호치에서 다시 패하고 폐구로 달아남, 한왕이 옹 땅을 평정하고 폐구를 포위資治通鑑 卷009 (원문 단락 #668, -206년)
기원전 205년城陽정월 항왕이 성양에 이르러 제왕 전영과 싸워 이김 — 영은 평원으로 달아나 피살, 항왕은 전가를 제왕으로 세우고 북해까지 가서 성곽을 불사르고 항복병을 묻음資治通鑑 卷009 (원문 단락 #682, -205년)
기원전 205년彭城항왕이 정병 3만으로 노에서 호릉을 거쳐 소에 이르러 새벽에 한군을 쳐 동쪽 팽성까지 한낮에 대파 — 한군 십여만이 곡수·사수에 빠져 죽음資治通鑑 卷009 (원문 단락 #688, -205년)
기원전 204년井陘한신이 정형구 30리 앞에서 멈추고 한밤에 붉은 기를 든 경기 2천을 샛길로 보내 조군 진영을 빼앗게 함(배수진 준비)資治通鑑 卷010 (원문 단락 #710, -204년)
기원전 203년濰水11월 제·초와 한이 유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침 — 한신이 모래주머니 만여 개로 상류를 막았다 터뜨려 용저군 태반이 건너지 못하고 용저는 전사資治通鑑 卷010 (원문 단락 #736, -203년)
기원전 203년鴻溝항우가 식량이 다하고 한신이 공격해 오자 후공을 통해 태공을 돌려받으며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나누기로 약속(서쪽 한·동쪽 초), 9월 초군이 동쪽으로 돌아감資治通鑑 卷010 (원문 단락 #746, -203년)
기원전 202년垓下12월 항왕이 해하에서 병력·식량이 다해 한군·제후군에 몇 겹으로 포위됨 — 한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리자 놀라 슬픈 노래를 부름資治通鑑 卷011 (원문 단락 #750, -202년)
기원전 201년馬邑가을 흉노가 마읍에서 한왕 신을 포위 — 신이 화친을 교섭하다 의심받자 9월 마읍째 항복, 묵돌이 구주를 넘어 태원·진양을 공격資治通鑑 卷011 (원문 단락 #794, -201년)
기원전 200년銅鞮고조가 직접 한왕 신을 동제에서 격파하고 장수 왕희를 베자 신은 흉노로 달아남 — 만구신·왕황이 조리를 왕으로 세워 흉노와 다시 공격을 꾀함資治通鑑 卷011 (원문 단락 #799, -200년)
기원전 200년白登고제가 먼저 평성에 이르렀으나 병력이 다 모이지 않은 채 묵돌의 정기 40만에 백등에서 7일간 포위됨 — 진평의 비책으로 연지(閼氏)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 풀림資治通鑑 卷011 (원문 단락 #801, -200년)
기원전 195년蘄겨울 10월 고제와 경포가 기현 서쪽에서 맞붙음 — 고제가 용성에 보루를 쳤고 경포가 '황제가 되고 싶다' 하자 대전, 경포는 패해 회수를 건너 달아남資治通鑑 卷012 (원문 단락 #855, -195년)
기원전 183년長沙남월 조타가 스스로 남월 무제를 칭하고 군사를 내 장사를 공격해 몇 개 현을 깨고 물러감資治通鑑 卷013 (원문 단락 #937, -183년)
기원전 180년長安여산이 여록이 북군을 떠난 줄 모르고 미앙궁에 들어가 난을 꾀하다 전문을 못 넘어 배회 — 평양후의 급보에 태위가 주허후 장에게 병 천여 명을 주어 궁을 호위하게 함資治通鑑 卷013 (원문 단락 #973, -180년)
기원전 166년蕭關겨울 흉노 노상선우가 14만 기로 조나·소관에 들어와 북지도위 앙을 죽이고 많은 인민·가축을 노략, 팽양을 거쳐 회중궁을 불태움 — 한이 장군들을 정하고 장안 곁에 병력 10만을 주둔시킴資治通鑑 卷015 (원문 단락 #1116, -166년)
기원전 154년廣陵오·초 7국의 난 — 삭지 문서가 오의 회계·예장 군에 이르자 오왕이 먼저 거병해 한 이천석 이하 관리를 죽이고, 교서·교동·치천·제남·초·조가 모두 반란資治通鑑 卷016 (원문 단락 #1179, -154년)
기원전 154년臨菑세 왕이 임치를 포위 — 제왕이 보낸 노중대부에게 천자가 '한군이 오·초를 곧 깰 것이니 굳게 지키라' 전하게 했으나 포위가 몇 겹이라 들어가지 못함資治通鑑 卷016 (원문 단락 #1193, -154년)
기원전 133년馬邑안문 마읍 호족 섭일이 대행 왕회를 통해 흉노를 이익으로 유인해 복병으로 치자고 건의 — 무제가 공경에게 물음資治通鑑 卷018 (원문 단락 #1356, -133년)
기원전 130년夜郎당몽이 중랑장으로 천 명·군량 만여 명을 이끌고 파·촉 작관으로 들어가 야랑후 다동을 만나 이익으로 설득하고 관리 임명을 약속받음 — 돌아와 건위군을 둠資治通鑑 卷018 (원문 단락 #1369, -130년)
기원전 127년雲中흉노가 상곡·어양에 들어와 천여 명을 죽이고 노략 — 위청·이식이 운중 서쪽에서 농서까지 나가 하남의 누번·백양왕을 쳐 하남 땅을 차지, 위청을 장평후에 봉함資治通鑑 卷018 (원문 단락 #1414, -127년)
기원전 124년高闕흉노 우현왕이 삭방을 자주 침범하자 거기장군 위청이 3만 기로 고궐에서 출격, 소건·이저·공손하·이채가 모두 위청에 속해 삭방에서 함께 나감資治通鑑 卷019 (원문 단락 #1441, -124년)
기원전 121년焉支山표기장군 곽거병이 1만 기로 농서에서 출격해 5개 왕국을 거치며 6일 싸워 언지산을 천여 리 지나 절란왕·노후왕을 베고 혼야왕 아들·상국을 사로잡고 휴도왕의 제천금인을 얻음資治通鑑 卷019 (원문 단락 #1476, -121년)
기원전 121년祁連山여름 곽거병과 공손오는 북지에서, 장건·이광은 우북평에서 따로 나감 — 이광이 4천 기로 앞서 가다 흉노 좌현왕 4만 기에게 포위됨資治通鑑 卷019 (원문 단락 #1477, -121년)
기원전 119년狼居胥山곽거병이 대·우북평에서 2천여 리 나가 대막을 건너 둔두왕·한왕 등을 사로잡고 낭거서산에 봉(封), 고연에서 선(禪)하고 한해에 올라 바다를 봄資治通鑑 卷019 (원문 단락 #1505, -119년)
기원전 115년烏孫장건이 오손에 이르자 곤막의 예가 거만했으나 동쪽 옛 땅으로 돌아오면 공주를 보내 형제를 맺고 흉노를 막자고 설득 — 오손은 한이 멀고 흉노를 두려워해 이주를 원치 않음資治通鑑 卷020 (원문 단락 #1547, -115년)
기원전 111년番禺누선장군 양복이 월 땅에 들어가 심협을 함락하고 석문을 깨고 번우에 이르러 남월왕 건덕·상 여가의 성을 포위, 불을 놓아 공격함 — 복파장군 노박덕도 도달資治通鑑 卷020 (원문 단락 #1581, -111년)
기원전 110년泰山4월 봉고에서 양보산 지주 제사를 올리고 을묘일 태산 아래 동쪽에 봉(封)을 쌓음 — 천자가 시중 곽자후와 태산에 올라 비밀 의례를 행함資治通鑑 卷020 (원문 단락 #1596, -110년)
기원전 109년朝鮮무제가 사형수를 모집해 병사로 삼아 누선장군 양복은 제에서 발해를 건너고 좌장군 순체는 요동으로 나가게 하여 조선을 정벌함資治通鑑 卷021 (원문 단락 #1612, -109년)
기원전 108년王險城좌장군이 패수 위의 군을 깨고 성 아래 서북쪽을, 누선이 남쪽을 포위했으나 우거가 수개월 굳게 지켜 함락하지 못함 — 두 장수의 불화資治通鑑 卷021 (원문 단락 #1620, -108년)
기원전 102년大宛이사장군이 다시 출병해 윤대를 도륙하고 서쪽으로 대완 성에 이르러 3만 군으로 대완군을 쳐 성안으로 몰아넣음 — 욱성을 칠지 망설임資治通鑑 卷021 (원문 단락 #1667, -102년)
기원전 99년天山5월 이사장군 이광리가 3만 기로 주천에서 나가 천산에서 우현왕을 쳐 1만여 급을 얻고 돌아오다 흉노에 포위돼 사상자가 많았으나 조충국 등이 포위를 뚫음資治通鑑 卷021 (원문 단락 #1686, -99년)
기원전 99년浚稽山이릉이 준계산에서 선우와 마주쳐 3만 기에게 포위됨 — 두 산 사이에 큰 수레로 진영을 짓고 천 개의 쇠뇌로 수천을 죽임資治通鑑 卷021 (원문 단락 #1689, -99년)
기원전 74년長安곽광이 군신과 함께 태후를 뵙고 창읍왕이 종묘를 이을 수 없음을 아룀 — 태후가 미앙 승명전에 나와 금문을 막아 창읍 신하들이 못 들어가게 함資治通鑑 卷024 (원문 단락 #1866, -74년)
기원전 65년莎車풍봉세가 사차왕을 벤 뒤 서쪽 대완에 이르러 존중받고 명마를 얻어 돌아옴 — 소망지는 임금 명령 없이 제국 병을 동원한 일을 후례로 삼을 수 없다고 반대資治通鑑 卷025 (원문 단락 #1963, -65년)
기원전 51년長安흉노 호한야 선우가 내조해 번신(藩臣)을 칭하되 이름은 부르지 않게 하고, 관대·의복·황금새·검·활·안거 등 후한 하사를 받음資治通鑑 卷027 (원문 단락 #2093, -51년)
기원전 36년都賴水진탕·감연수가 곽지 성 도뢰수 가에서 성 3리 앞에 진영 — 성 위에 오색 깃발과 갑옷 입은 수백 명, 기병 백여 기가 나와 도발함資治通鑑 卷029 (원문 단락 #2226, -36년)
기원전 22년穎川6월 영천 철관 도형수 신도성 등 180명이 장리를 죽이고 무기고를 털어 장군을 자칭하며 9군을 지남 — 승상장사·어사중승이 추격해 모두 처형資治通鑑 卷031 (원문 단락 #2337, -22년)
6년安眾4월 안중후 유숭이 상 장소와 모의해 안한공 왕망에 맞서 종족 백여 명으로 완을 공격했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패함資治通鑑 卷036 (원문 단락 #2661, 6년)
13년焉耆서역이 왕망의 실신(失信)으로 흔들려 언기가 먼저 반란해 도호 단흠을 죽이자 서역이 와해됨資治通鑑 卷037 (원문 단락 #2741, 13년)
22년舂陵유연(伯升)이 호걸들을 모아 '왕망의 폭정·가뭄·병란은 한 고조 대업을 되살릴 때'라 하고 친객을 여러 현에 보내 기병, 자신은 용릉 자제를 일으킴資治通鑑 卷038 (원문 단락 #2825, 22년)
23년昆陽6월 기묘삭 유수가 보기 천여 명으로 선봉이 되어 대군 4~5리 앞에 진을 치고 왕심·왕읍이 보낸 수천을 베어 장수들이 용맹에 놀람資治通鑑 卷039 (원문 단락 #2840, 23년)
23년長安9월 무신삭 군사가 선평성문으로 들어오고 왕읍 등이 북궐 아래서 맞섰으나 해질녘에 관부가 무너짐 — 성안 소년 주제·장어 등이 약탈을 피하려 호응해 작실문을 불태움資治通鑑 卷039 (원문 단락 #2849, 23년)
24년長安신도건·이송이 장안에서 경시제의 천도를 맞이해 2월 경시가 낙양을 떠나 장안에 이름 — 삼보 호걸의 불만 속에 대사면資治通鑑 卷039 (원문 단락 #2862, 24년)
25년成都촉군 공조 이웅의 권유로 공손술이 4월 황제를 칭해 성가(成家), 연호 용흥으로 개원하고 이웅을 대사도로 삼음 — 월휴 임귀가 군을 들어 항복資治通鑑 卷040 (원문 단락 #2896, 25년)
25년長安적미가 고릉에 이르자 왕광·장앙이 항복해 함께 동도문을 공격 — 9월 적미가 장안에 입성하고 경시제는 홀로 주방문으로 달아남資治通鑑 卷040 (원문 단락 #2914, 25년)
25년洛陽겨울 10월 계축 광무제가 낙양에 들어가 남궁에 머물고 도읍으로 정함資治通鑑 卷040 (원문 단락 #2920, 25년)
26년內黃8월 광무제가 직접 5교를 치러 나가 병진에 내황에 이르러 의양에서 5교를 대파해 5만 명을 항복시킴資治通鑑 卷040 (원문 단락 #2967, 26년)
28년黎丘11월 광무제가 완에 있는 동안 잠팽이 진풍을 3년 공격해 9만 급을 베고, 12월 여구에 이르러 진풍을 설득했으나 불응 — 주우가 잠팽 대신 여구를 포위하고 잠팽은 전융을 침資治通鑑 卷041 (원문 단락 #3033, 28년)
30년朐오한 등이 구(朐)를 함락해 동헌·방맹을 베어 강·회·산동이 모두 평정됨資治通鑑 卷042 (원문 단락 #3090, 30년)
30년長安4월 병자 광무제가 장안에 가 원릉을 알현하고 경엄·개연 등 7장군을 농도로 보내 촉을 치게 하고 내흡을 보내 외효를 설득함資治通鑑 卷042 (원문 단락 #3099, 30년)
31년陰槃가을 외효가 보기 3만으로 안정에 침입해 음반에 이르자 풍이가 막음 — 또 별장이 농을 내려와 제준을 공격했으나 모두 이득 없이 돌아감資治通鑑 卷042 (원문 단락 #3124, 31년)
36년成都겨울 11월 장궁이 성문에 이르자 무술일 공손술이 수만으로 직접 한군을 공격, 연잠이 3번 이겼으나 피로한 틈에 한군 고오가 술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림資治通鑑 卷043 (원문 단락 #3193, 36년)
40년交趾봄 2월 징측·징이 자매가 반란하자 구진·일남·합포 만이가 호응해 65성을 쳐 스스로 왕이 되어 미령에 도읍 — 교지 자사·태수는 겨우 자수함資治通鑑 卷043 (원문 단락 #3236, 40년)
45년不韋정월 불위까지 추격해 동잠(棟蠶)의 우두머리를 베어 서남 이족이 모두 평정됨資治通鑑 卷043 (원문 단락 #3288, 45년)
56년泰山광무제가 『하도회창부』의 '적류구세, 회명대종'에 감동해 양송에게 하락 참문을 조사케 함 — 장순 등이 봉선을 청하자 허락資治通鑑 卷044 (원문 단락 #3359, 56년)
57년洛陽2월 무술 광무제가 남궁 전전에서 승하(62세) — 매일 아침 조회·경서 강론에 쉬지 않아 태자가 건강을 염려했음資治通鑑 卷044 (원문 단락 #3374, 57년)
73년鄯善두고가 반초를 우전에 사신으로 보내려 하자 반초가 36명만 데리고 가겠다 함 — 우전왕 광덕이 남도에서 강성했고 흉노가 사신을 보내 감독하고 있었음資治通鑑 卷045 (원문 단락 #3476, 73년)
75년疏勒경공이 소륵성이 시냇물 곁이라 거점으로 삼았으나 7월 흉노가 물길을 끊자 성안에서 우물을 15장 파도 물이 안 나와 마분 즙까지 마시다 끝내 샘이 솟음資治通鑑 卷045 (원문 단락 #3494, 75년)
78년姑墨윤달 서역 가사마 반초가 소륵·강거·우전·구미 병 1만으로 고묵 석성을 쳐 깨고 7백 급을 벰資治通鑑 卷046 (원문 단락 #3537, 78년)
84년莎車반초가 소륵·우전 병으로 사차를 치자 사차가 소륵왕 충을 뇌물로 꾀어 반란시켜 오즉성으로 보전 — 반초가 소륵 부승 성대를 왕으로 세우고 충을 공격資治通鑑 卷046 (원문 단락 #3590, 84년)
87년雲中북흉노가 크게 어지러워 굴란저 등 58부 28만 구가 운중·오원·삭방·북지에 항복함資治通鑑 卷047 (원문 단락 #3624, 87년)
87년莎車반초가 우전 등 제국 병 2만 5천으로 사차를 치자 구자왕이 온숙·고묵·위두 병 5만으로 구원 — 반초는 병력이 적다며 각자 흩어지는 척하는 계책을 짬資治通鑑 卷047 (원문 단락 #3626, 87년)
89년雞鹿塞6월 두헌·경병이 삭방 계록새에서, 남선우는 만이곡에서, 도요장군 등홍은 고양새에서 나와 탁야산에서 모임 — 두헌의 별동대가 계락산에서 북선우를 대파資治通鑑 卷047 (원문 단락 #3647, 89년)
90년伊吾두헌이 부교위 염반에게 기병 2천여로 북흉노의 이오 수비대를 기습해 땅을 되찾게 하자 차사 전·후왕이 아들을 시종으로 보냄資治通鑑 卷047 (원문 단락 #3656, 90년)
91년金微山2월 두헌이 경기·임상을 거연새로 보내 금미산에서 북선우를 포위·대파 — 어머니 연지·명왕 이하 5천여 급을 얻고 선우는 도주資治通鑑 卷047 (원문 단락 #3664, 91년)
94년焉耆서역도호 반초가 구자·선선 등 8국 병 7만여로 언기를 쳐 성 아래서 언기왕 광·위리왕 범 등을 진목 고성에서 유인해 베고 5천 급을 벰, 원맹을 새 왕으로 세움資治通鑑 卷048 (원문 단락 #3712, 94년)
105년遼東봄 고구려왕 궁이 요동 변새에 들어와 6개 현을 약탈함資治通鑑 卷048 (원문 단락 #3783, 105년)
108년漢陽정월 등즐이 한양에 이르렀으나 군이 이르기 전 종강 수천에게 기서에서 패해 천여 명이 죽음 — 양근은 장액·고장 등지에서 강 1만여를 격파資治通鑑 卷049 (원문 단락 #3840, 108년)
108년北地전영이 스스로 천자라 칭하고 북지에 무도 참랑·상군·서하 잡종강을 모아 농도를 끊고 삼보를 노략, 남쪽 익주로 들어가 한중태수 동병을 죽임資治通鑑 卷049 (원문 단락 #3845, 108년)
109년美稷남선우가 중랑장 경종을 미직에서 포위 — 11월 하희 등이 5영과 변군병 2만여를 이끌고 가고, 요동태수 경기는 선비·여러 군병을 이끌고 함께 치게 함資治通鑑 卷049 (원문 단락 #3859, 109년)
111년河東선령강이 하동을 노략해 하내에 이르자 백성이 놀라 남쪽으로 달아남 — 북군 5영을 맹진에 주둔시키고 위군·조국·상산·중산에 보루 616곳을 세움資治通鑑 卷049 (원문 단락 #3887, 111년)
116년靈州계유 도요장군 등준이 남선우를 이끌고 영주에서 영창을 쳐 800여 급을 벰資治通鑑 卷050 (원문 단락 #3943, 116년)
120년伊吾북흉노가 거사 후왕군과 함께 후부 사마·돈황 장사 색반 등을 죽이고 전왕을 몰아내 북도를 차지 — 선선이 급해 조종에 구원을 청하나 공경들은 옥문관을 닫자 함資治通鑑 卷050 (원문 단락 #3987, 120년)
123년曼柏선비 기지건이 1만여 기로 남흉노를 만백에서 쳐 약건일축왕을 죽이고 천여 명을 죽임資治通鑑 卷050 (원문 단락 #4054, 123년)
124년樓蘭정월 반용이 누란에 이르자 선선이 귀부해 삼수(三綬)를 더해 줌 — 구자왕 백영이 의심하다 고묵·온숙 병과 함께 스스로 결박해 항복, 반용은 1만여 병으로 차사 전왕정에서 흉노 이이왕을 격퇴資治通鑑 卷050 (원문 단락 #4057, 124년)
125년車師7월 서역장사 반용이 돈황·장액·주천 기병 6천과 선선·소륵·차사 전부 병으로 후부왕 군취를 대파, 8천여 급을 얻고 군취와 흉노 사자를 사로잡아 색반이 죽은 곳에서 참수資治通鑑 卷051 (원문 단락 #4090, 125년)
125년洛陽11월 을묘 환관 손정 등이 서종 아래 모여 옷자락을 잘라 맹세하고 거사를 도모함資治通鑑 卷051 (원문 단락 #4093, 125년)
126년臨洮농서 종강이 반란 — 교위 마현이 임조에서 싸워 천여 급을 베자 강이 모두 항복해 양주가 다시 안정됨資治通鑑 卷051 (원문 단락 #4111, 126년)
127년焉耆서역 제국이 복속했으나 언기왕 원맹만 항복하지 않아 반용이 공격을 주청 — 돈황태수 장랑이 하서 4군 병 3천과 제국 병 4만여를 두 길로 나눠 기약대로 가기로 했으나 장랑이 공을 서둘러 먼저 감資治通鑑 卷051 (원문 단락 #4123, 127년)
140년西河남흉노 구룡왕 오사·차뉴 등이 반란해 서하를 노략하고 우현왕을 꾀어 미직을 포위, 삭방·대군 장리를 죽임 — 도요장군 마속 등이 변병·강·호 2만여로 기습해 격파資治通鑑 卷052 (원문 단락 #4232, 140년)
141년射姑山정월 정서장군 마현이 차동강과 사고산에서 싸워 패해 마현과 두 아들이 전사 — 동·서강이 크게 합침資治通鑑 卷052 (원문 단락 #4242, 141년)
144년歷陽양주자사 윤요·구강태수 등현이 역양에서 범용 등을 토벌하다 패몰資治通鑑 卷052 (원문 단락 #4280, 144년)
145년廣陵등무가 장영을 쳐 11월 병오 깨뜨려 천여 급을 얻고 이튿날 조서가 겁쟁이로 수급을 부풀린 중랑장 조서를 기시(棄市)함資治通鑑 卷052 (원문 단락 #4296, 145년)
159년洛陽8월 정축 양기가 선초 등을 의심해 중황문 장혜를 궁에 숙직시키자 구원이 장혜를 잡고 황제가 전전에 나와 상서들을 불러 사태를 밝히며 상서령 윤훈이 부절을 거두고 병기를 든 채 성문을 지키게 함(양기 주살 정변)資治通鑑 卷054 (원문 단락 #4420, 159년)
160년張掖서강 잔당이 소하와 장액을 노략하며 새벽에 단경 군영을 습격 — 단경이 말에서 내려 대전, 화살이 다해도 추격해 적석산까지 2천여 리 나가 소하 대수령을 베고 항복시킴資治通鑑 卷054 (원문 단락 #4440, 160년)
161년湟中겨울 선령·심저강이 병·양 2주를 노략하자 교위 단경이 황중 의종을 이끌고 토벌했으나 양주자사 곽굉이 공을 시기해 군을 막아 의종이 흩어지고 단경은 하옥됨資治通鑑 卷054 (원문 단락 #4466, 161년)
166년洛陽하내 장성이 점으로 사면을 예측해 아들에게 살인을 시키자 사례교위 이응이 잡아 죽임 — 환관이 장성의 제자 뇌수를 시켜 이응 등이 태학생과 교유하며 조정을 비방한다고 고발하게 함(1차 당고)資治通鑑 卷055 (원문 단락 #4548, 166년)
172년句章11월 회계 요적 허생이 구장에서 양명황제를 자칭하고 무리가 만을 헤아리자 양주자사 장민·단양태수 진인을 보내 토벌함資治通鑑 卷057 (원문 단락 #4608, 172년)
183년鉅鹿거록 장각이 황로를 섬겨 태평도를 가르치고 부수로 병을 고치며 십여 년 만에 청·서·유·기·형·양·연·예 8주에 수십만 신도를 모음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40, 183년)
184년洛陽봄 각의 제자 당주가 밀고해 마원의가 낙양에서 거열형 — 조서로 천여 명이 처형되고 기주에서 각을 체포하려 하자 각이 곧바로 일제 봉기를 명해 황건을 표식으로 삼음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43, 184년)
184년宛경자 남양 황건 장만성이 태수 저공을 공격해 죽임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49, 184년)
184년潁川황보숭·주준이 4만여로 영천 황건을 토벌 — 주준이 파재에게 패하자 황보숭은 장사로 물러나 지킴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52, 184년)
184년長社파재가 황보숭을 장사에서 포위 — 황보숭이 바람 부는 밤 횃불 작전으로 적진을 불질러 격파, 때마침 기도위 조조가 군을 이끌고 도착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54, 184년)
184년廣宗북중랑장 노식이 장각을 연이어 격파해 만여 급을 얻자 각이 광종으로 달아나 지킴 — 노식이 참호·운제로 함락 직전에 이르렀으나 소황문 좌풍이 모함해 황제가 노함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60, 184년)
184년蒼亭8월 황보숭이 창정에서 황건과 싸워 우두머리 복이를 사로잡음 — 동탁은 장각 토벌에 공이 없어 죄를 받고, 기사일 황보숭에게 각 토벌을 명함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62, 184년)
184년廣宗10월 황보숭이 광종에서 장각의 아우 장량과 싸워 처음엔 이기지 못하다 이튿날 새벽 기습으로 대파해 장량을 베고 3만 급을 얻음, 황하에 빠져 죽은 자 5만 — 각은 이미 병으로 죽은 뒤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65, 184년)
184년宛장만성의 잔당이 조홍을 우두머리로 삼아 10여만으로 완성을 점거 — 주준이 형주자사 서구 등과 6~8월 포위했으나 함락 못해 소환 논의가 나옴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70, 184년)
185년美陽장온이 10여만으로 미양에 주둔, 변장·한수가 맞서 싸워 불리 — 11월 동탁이 포홍과 함께 쳐 크게 깨뜨리자 변장·한수는 유중으로 달아남資治通鑑 卷058 (원문 단락 #4790, 185년)
188년綿竹익주 마상·조지 등이 면죽에서 기병해 황건을 자칭하고 자사 극검을 죽인 뒤 파군·건위를 쳐 한 달 사이 3군을 깸 — 상이 천자를 자칭, 종사 가룡이 격파하고 유언을 맞아 치소를 면죽으로 옮김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831, 188년)
188년陳倉11월 왕국이 진창을 포위하자 황보숭을 좌장군으로 복직시켜 전장군 동탁과 4만으로 막게 함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840, 188년)
189년洛陽8월 무진 하진이 장락궁에 들어가 태후에게 환관 주살을 청하자 장양·단규가 엿듣고 무리 수십 명과 병기를 들고 측문으로 몰래 들어와 매복함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859, 189년)
189년洛陽9월 계유 동탁이 백관을 모아 '황제가 암약하니 진류왕을 세우겠다' 하고 이의를 막겠다 협박 — 공경들이 두려워 응답하지 못함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865, 189년)
190년長安정해 동탁이 어가를 서쪽으로 옮김 — 부호를 죄로 몰아 재산 몰수·주살하고 백성 수백만을 장안으로 몰아 쓰러져 죽게 하며, 낙양 궁묘·관부·민가 200리를 불태움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890, 190년)
190년酸棗조조가 산조에 이르러 제군 10여만이 매일 술자리만 벌이자 질책하고 — 발해는 하내 병으로 맹진, 산조 장수는 성고·오창을 막고 원술은 남양군으로 단·석에서 무관에 들어가는 계책을 냄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896, 190년)
190년魯陽겨울 손견이 노양성 동쪽에서 관속과 연회 중 동탁의 보기 수만이 급습 — 대열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성해 동탁군이 감히 못 치고 물러감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902, 190년)
190년河陽왕광이 하양진에 주둔하자 동탁이 습격해 크게 깨뜨림資治通鑑 卷059 (원문 단락 #4903, 190년)
191년陽人손견이 양동에서 서영에게 패했다가 흩어진 병을 모아 양인에 주둔 — 동탁이 호진·여포를 보냈으나 손견이 대파해 화웅을 벰, 어떤 이가 원술에게 손견을 '이리를 없애고 호랑이를 얻는 것'이라 경계資治通鑑 卷060 (원문 단락 #4913, 191년)
192년界橋원소가 공손찬과 계교 남쪽 20리에서 싸움 — 찬의 3만 기병이 돌진했으나 국의의 정병 800이 방패 아래 엎드렸다 10여 보에서 일제 발사해 대파資治通鑑 卷060 (원문 단락 #4936, 192년)
192년長安4월 정사 동탁이 조복으로 수레를 타고 미앙전 회의에 들어가고 병사가 길 양편에 늘어섬 — 왕윤의 조서를 받은 여포가 이숙·진의 등 10여 명을 위사로 변장시켜 매복케 함資治通鑑 卷060 (원문 단락 #4940, 192년)
192년長安여포군의 수병(叟兵)이 내응해 6월 무오 이각 군이 성에 들어와 약탈 — 여포가 싸우다 동탁의 머리를 말안장에 달고 도주하며 왕윤에게 함께 가자 권했으나 왕윤은 남음資治通鑑 卷060 (원문 단락 #4947, 192년)
192년濟北조조가 청주 황건을 제북까지 추격해 모두 항복시키고 병사 30여만·남녀 100여만 구를 얻어 정예를 청주병으로 삼음資治通鑑 卷060 (원문 단락 #4961, 192년)
193년朝歌원소가 조가 녹장산에서 어독을 포위 5일 만에 깨고 어독과 무리 만여 급을 벰 — 이어 산을 따라 북진해 좌자장팔 등을 차례로 격파資治通鑑 卷060 (원문 단락 #4977, 193년)
194년琅邪조조가 도겸을 쳐 낭야·동해에서 지나는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돌아오다 담 동쪽에서 유비를 깸 — 장막이 반란해 여포를 맞이하자 조조가 군을 돌림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4993, 194년)
194년濮陽여포의 별둔이 복양 서쪽에 있자 조조가 야습해 깼으나 여포가 돌아와 직접 수십 합을 싸움 — 전위가 응모자를 이끌고 방어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10, 194년)
194년郯서주목 도겸이 위독해 미축에게 '유비가 아니면 이 주를 안정시킬 수 없다' 했고 겸이 죽자 미축이 주민을 이끌고 유비를 맞았으나 유비는 원술이 수춘에 있다며 사양, 진등이 원술의 교만을 이유로 반대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15, 194년)
195년長安3월 병인 이각이 형의 아들 이섬에게 수천 병으로 궁을 포위하게 해 수레 3승으로 황제를 맞이함 — 태위 양표가 항의했으나 소용없음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26, 195년)
195년長安7월 갑자 어가가 선평문을 나가 다리를 건너려 하자 곽사 병 수백이 막아 '이 천자가 맞느냐' 했고 시중 유애가 '천자이시다' 외쳐 증명 — 어가가 동쪽으로 나아감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36, 195년)
195년曹陽임신 황제가 조양에서 노숙 — 동승·양봉이 거짓으로 이각 등과 화해하며 몰래 하동 백파수 이락·한섬·호재와 남흉노 우현왕 거비를 불러 이각군을 대파, 수천 급을 벰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43, 195년)
195년安邑어가가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 머물고 문에 빗장도 없이 천자와 군신이 회합, 병사들이 울타리 위로 구경하며 서로 눌러 웃음거리로 삼음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47, 195년)
195년牛渚손책이 유요의 우저 영채를 쳐 군량·병기를 얻고 설례·착융을 깨며 곡아에서 유요를 공격함資治通鑑 卷061 (원문 단락 #5053, 195년)
196년洛陽경자 양봉·한섬이 어가를 모시고 동쪽으로 돌아가 7월 갑자 낙양에 이르러 옛 중상시 조충의 집에 거함 — 8월 남궁 양안전에 들어가고 장양이 자기 공이라 전각 이름을 양안이라 함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078, 196년)
196년會稽손책이 '엄백호 등은 큰 뜻 없는 도적'이라며 절강을 건너 회계로 진군 — 회계 공조 우번이 태수 왕랑에게 피하라 했으나 왕랑이 듣지 않고 군을 내 손책을 막음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083, 196년)
196년洛陽한섬이 공을 믿고 전횡하자 동승이 은밀히 조조를 불러 — 조조가 낙양에 이르러 한섬·장양의 죄를 아뢰고 신해일 사례교위·녹상서사를 겸임, 상서 풍석 등 3인을 죽임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088, 196년)
196년梁양봉이 양에서 어가를 막으려다 못했고 겨울 10월 조조가 양봉을 쳐 양봉은 남쪽 원술에게 달아나고 조조가 그 양둔을 함락함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091, 196년)
197년淯水정월 조조가 장수를 치러 육수에 주둔하자 장수가 항복 — 조조가 장제의 처를 취하자 장수가 원한을 품고 습격해 장자 조앙을 죽이고 조조도 화살에 맞아 패주, 전위가 장수와 힘껏 싸움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107, 197년)
197년壽春원술이 수춘에서 황제를 칭하고 중가(仲家)라 부르며 공경백관을 두고 천지에 교사를 지냄 — 패상 진규가 서신으로 만류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110, 197년)
197년湖陽겨울 11월 조조가 다시 장수를 쳐 호양을 함락하고 유표 장수 등제를 사로잡고 무음도 함락함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127, 197년)
198년下邳조조가 하비성에 해자를 파 포위해 오래 끌어 병사가 지치자 순유·곽가가 여포는 용맹하나 무모하니 서둘러 공격하라 권해 기·사수를 끌어들여 성에 물을 댐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140, 198년)
198년下邳여포가 조조를 보고 '오늘 이후 천하는 정해졌다' 하며 포박이 너무 급하다고 유비에게 한마디 해 달라 청함 — 조조가 진궁에게도 말을 건넴資治通鑑 卷062 (원문 단락 #5142, 198년)
199년易3월 흑산 장연과 공손속이 10만으로 구원하려 했으나 공손찬의 밀서를 가로챈 원소가 약속된 불 신호를 꾸며 공손찬이 구원이 온 줄 알고 출전해 크게 패하고 성 안으로 돌아감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60, 199년)
199년官渡조조가 다시 관도에 진을 치자 서타 등이 암살을 꾀해 조조 장막에 들어갔으나 교위 허저가 알아채고 죽임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71, 199년)
200년許정월 동승의 모의가 누설되어 조조가 동승·왕복·종집을 죽이고 삼족을 멸함 — 조조가 유비를 직접 치려 하자 장수들이 원소를 근심했으나 조조는 '유비는 인걸'이라며 강행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73, 200년)
200년白馬원소가 안량을 보내 동군태수 유연을 백마에서 공격 — 저수가 안량은 성급하니 홀로 맡기지 말라 했으나 불청, 4월 조조가 북상해 유연을 구하며 순유가 연진 양동 작전을 제안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76, 200년)
200년延津원소가 황하를 건너 추격하자 저수가 연진에 머물며 관도에 분병하자고 간했으나 듣지 않음 — 저수는 '유유한 황하를 내가 건너랴' 탄식하며 병을 핑계로 사양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77, 200년)
200년陽武원소가 양무에 주둔하자 저수가 북군은 많지만 남군보다 날쌔지 않으니 장기전을 권했으나 불용 — 8월 원소가 모래 언덕을 따라 동서 수십 리에 진영, 조조도 분영해 대치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84, 200년)
200년官渡조조가 싸워 이기지 못하고 영채로 돌아가 굳게 지킴 — 원소가 높은 망루·토산에서 활을 쏘자 조조는 벽력거로 망루를 부수고 땅굴엔 참호로 맞서나 군량이 떨어지고 백성이 이탈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86, 200년)
200년烏巢조조가 정병 보기 5천을 원군 깃발로 위장해 밤에 샛길로 가 오소의 순우경 둔영을 포위하고 크게 불을 지름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88, 200년)
200년黎陽기주 성읍이 많이 조조에게 항복 — 원소가 여양 북안으로 달아나 장군 장의거 영채에 들어가 '머리를 맡기노라' 하자 군중이 원소가 있음을 듣고 다시 모임資治通鑑 卷063 (원문 단락 #5189, 200년)
201년汝南조조가 직접 여남에서 유비를 쳐 유비가 유표에게 달아남 — 유표가 교외에서 맞아 상빈 예로 대하고 신야에 주둔시킴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03, 201년)
201년成都조위가 유장을 성도에서 포위했으나 동주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싸워 조위가 패퇴, 강주까지 추격해 죽임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05, 201년)
202년鄴원소가 패전에 부끄러워 병이 나 피를 토하고 5월 죽음 — 막내 상을 후사로 삼으려 했으나 말하지 못한 채 장자 담을 형의 후사로 출계시켜 청주자사로 보냄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08, 202년)
202년葉유표가 유비를 북으로 보내 섭에 이르자 조조가 하후돈·우금 등을 보냈는데 유비가 진영을 불사르고 물러나는 척해 하후돈이 추격하다 복병에 걸림 — 이전이 추격을 만류했으나 듣지 않음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10, 202년)
203년黎陽2월 조조가 여양을 쳐 원담·원상과 성 아래서 싸워 이기자 두 사람이 업으로 돌아가고, 4월 조조가 업까지 추격해 보리를 거둠 — 곽가는 급공을 말림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12, 203년)
203년江夏손권이 서쪽으로 황조를 쳐 수군을 깼으나 성은 못 얻고 산적이 다시 일어 돌아오며 예장을 지나 여범·정보·태사자 등을 보내 파양·회계·낙안·해혼 등을 평정, 산월을 토벌하게 함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17, 203년)
204년白溝정월 조조가 황하를 건너 기수를 막아 백구에 흘려 군량 수송로를 엶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18, 204년)
204년鄴5월 조조가 토산·땅굴을 헐고 해자를 둘러 성 주위 40리를 포위 — 처음 얕게 파 심배가 비웃는 사이 하룻밤에 폭 2장 깊이로 판 뒤 장수를 끌어들여 물을 대니 성중 반이 굶어 죽음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20, 204년)
204년鄴원상의 군이 도착하자 장수들은 피하자 했으나 조조가 '큰길로 오면 피하고 서산을 따라오면 사로잡는다' 했고 원상이 서산을 따라 양평정, 업 17리 부수 가에 진영 — 밤에 횃불로 성중과 호응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22, 204년)
205년南皮정월 조조가 남피를 공격, 원담이 나와 싸워 병사가 많이 죽자 조조가 완공을 생각했으나 조순의 건의로 직접 북을 쳐 공격해 함락, 원담은 달아나다 참수됨資治通鑑 卷064 (원문 단락 #5233, 205년)
206년壺關조조가 고간을 직접 치고 세자 비에게 업을 지키게 함 — 호관을 포위해 3월 항복, 고간은 흉노에 구원을 청했으나 선우가 받지 않아 남쪽 형주로 가려다 상락도위 왕염에게 잡혀 죽어 병주가 평정됨資治通鑑 卷065 (원문 단락 #5248, 2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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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 — 中文維基文庫(zh.wikisource.org) 編者, CC BY-SA 4.0 (원저작 PD). 대목 나누기·정리: 지도 프로젝트

원저작 PD · 위키문고(zh.wikisource.org) 본문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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