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국 · 좌표: 30.350, 112.190 · 사건 68건
| 해 | 사료 | 내용 |
|---|---|---|
| 101년 | 후한서(後漢書) 본기 | 무만이 반란해 남군을 침략함 |
| 208년 | 자치통감 | 조조가 강릉에서 강을 따라 내려오자 제갈량이 유비에게 손권에게 구원을 청하자 하고 노숙과 함께 시상에서 손권을 만나 설득함 |
| 208년 | 자치통감 | 주유·정보가 수만으로 강 건너 조인과 대치하며 교전하지 않음 — 감녕이 먼저 이릉을 취해 지키자고 청하고, 익주 장수 습숙이 군을 들어 항복하자 여몽이 그 병을 유지시키자고 아룀 |
| 209년 | 자치통감 | 주유가 조인을 1년여 공격해 많은 사상자를 내자 조인이 성을 버리고 달아남 — 손권이 주유를 남군태수로 강릉에 주둔시키고 정보는 강하태수로 사선에 치소를 둠 |
| 219년 | 자치통감 | 손권이 강릉에 이르자 형주 장리들이 모두 귀부 — 오직 치중종사 무릉 반준만 병을 핑계로 불출, 손권이 침상째 데려와 위로하자 울며 엎드렸다 일어나 절함 |
| 222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魏가 세 길로 침공해 曹眞·夏侯尚 등이 南郡을 포위, 諸葛瑾·潘璋이 구원(洞口·濡須에도 병력) |
| 223년 | 자치통감 | 曹真이 張郃을 시켜 吳兵을 격파하고 江陵 中洲를 차지 |
| 250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魏 王昶이 南郡을 포위하고 王基가 西陵을 공격하자 戴烈·陸凱가 막으러 가 모두 물러남 |
| 250년 | 자치통감 | 王昶이 대나무 줄로 다리를 이어 물을 건너 공격하자 吳 大將 施績이 밤에 江陵으로 달아남 |
| 280년 | 진서(晉書) 제기 | 杜預가 江陵을 함락하고 江陵督 伍延을 참수 |
| 280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晉이 6로로 吳를 쳐 杜預가 江陵督 伍延을 베고 王濬·唐彬이 강을 따라 내려오자 吳군이 무너짐 |
| 280년 | 자치통감 | 杜預는 江陵으로 향하고 王渾은 橫江으로 나와 吳의 鎭·戍를 공격해 가는 곳마다 이김 |
| 280년 | 자치통감 | 杜預가 江陵을 공격해 甲戌에 함락시키고 伍延을 참수 |
| 400년 | 진서(晉書) 제기 | 桓玄이 江陵을 습격, 荊州刺史 殷仲堪·楊佺期 피살 |
| 404년 | 진서(晉書) 제기 | 桓玄의 옛 장수 桓振이 江陵을 함락, 安帝가 다시 적진에 갇힘(閏5월) |
| 405년 | 진서(晉書) 제기 | 桓振이 다시 江陵을 습격하나 劉懷肅이 참수, 安帝가 江陵에서 돌아옴 |
| 405년 | 남사(南史) 본기 | 劉毅 등이 江津에서 桓謙·桓振을 격파해 江陵 평정 |
| 405년 | 자치통감 | 3월 桓振이 鄖城에서 江陵을 습격하자 荊州刺史 司馬休之가 싸워 패해 襄陽으로 달아나고 桓振이 荊州刺史를 자칭 |
| 412년 | 진서(晉書) 제기 | 劉裕 참군 王鎮惡이 江陵성을 함락하자 劉毅가 자살 |
| 412년 | 남사(南史) 본기 | 劉裕가 劉毅를 치려 王鎮惡을 보내 江陵을 습격·함락, 劉毅와 그 무리 처형 |
| 415년 | 진서(晉書) 제기 | 劉裕가 江津에서 司馬休之를 격파, 休之는 襄陽으로 도주 |
| 415년 | 남사(南史) 본기 | 劉裕가 江陵에서 長江을 건너 司馬休之군을 무너뜨리고 休之는 襄陽으로 달아나 江陵 평정 |
| 424년 | 남사(南史) 본기 | 荊州 江陵의 宜都王 義隆이 少帝 폐위 후 추대를 받아 江陵을 떠나 建康으로 출발 |
| 424년 | 송서(宋書) 본기 | 소제 폐위 후 백관이 행대를 이끌고 의도왕의 강릉에 이르러 새 황제에게 인새를 올림 |
| 424년 | 자치통감 | 의도왕 유의륭이 강릉에서 행대의 즉위 요청을 받고 건강으로 출발(7월) |
| 426년 | 자치통감 | 단도제·도언지의 조정군이 강릉에서 내려온 사회의 군대를 크게 깨뜨림(2월), 사회는 강릉으로 돌아가 주초가 항복 |
| 454년 | 남사(南史) 본기 | 荊州刺史 南郡王 義宣 등이 孝武帝에 대해 거병 |
| 454년 | 남사(南史) 본기 | 義宣이 江陵에서 사사됨 |
| 454년 | 송서(宋書) 본기 | 의선이 강릉에서 사사됨 |
| 454년 | 자치통감 | 주수지가 강릉에 들어가 유의선을 죽이고 아들 16명을 처형 |
| 477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荊州刺史 沈攸之가 장수 비방·태후령을 구실로 거병 |
| 477년 | 남사(南史) 본기 | 荊州刺史 沈攸之가 執政 蕭道成에 불복해 거병 |
| 477년 | 송서(宋書) 본기 | 차기대장군·형주자사 심유지가 거병해 반란 |
| 478년 | 남사(南史) 본기 | 沈攸之가 패해 목이 베이고 雍州刺史 張敬兒가 江陵을 함락, 荊州 평정 |
| 478년 | 송서(宋書) 본기 | 진군장군·옹주자사 장경아가 강릉을 이기고 형주 평정 |
| 490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巴東王 蕭子響이 죄를 얻어 丹陽尹 蕭順之가 군을 이끌고 토벌, 子響 처형 |
| 490년 | 남사(南史) 본기 | 荊州刺史 巴東王 子響이 반란, 蕭順之가 토벌해 子響 처형 |
| 490년 | 자치통감 | 파양왕 자향이 강진에서 조정군을 쏘아 대파, 이후 사로잡혀 교살 |
| 500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長史 蕭穎冑가 劉山陽을 죽이고 梁王(蕭衍)을 받들어 거의 |
| 500년 | 남사(南史) 본기 | 西中郎長史 蕭穎胄가 荊州에서 南康王 寶融을 받들어 거병 |
| 501년 | 남제서(南齊書) 본기 | 南康王 蕭寶融(和帝)이 即位, 中興으로 개원 (永元三年) |
| 501년 | 남사(南史) 본기 | 南康王 寶融이 江陵에서 황제 즉위(和帝, 中興) |
| 552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11월 辛巳 梁王 蕭繹이 江陵에서 즉위(元帝)하고 使者를 보냄 |
| 552년 | 진서(陳書) 본기 | 湘東王 蕭繹이 江陵에서 즉위하고 大寶3年을 承聖元年으로 고침(元帝) |
| 552년 | 양서(梁書) 본기 | 왕승변 등이 후경을 평정하고 수급을 강릉으로 보냄 |
| 552년 | 양서(梁書) 본기 | 원제가 강릉에서 즉위 |
| 552년 | 남사(南史) 본기 | 元帝(蕭繹)가 江陵에서 즉위, 承聖 개원 |
| 554년 | 북제서(北齊書) 제기 | 西魏가 江陵의 梁 元帝를 공격, 齊가 清河王 高岳 등을 보내 구원했으나 도착 전에 江陵이 함락되어 元帝는 于謹에게 피살 |
| 554년 | 북사(北史) 본기 | 於謹이 江陵을 함락하고 梁 元帝를 죽여 백관·사민 10여만을 노비로 끌고 옴 |
| 554년 | 진서(陳書) 본기 | 西魏가 江陵을 함락 |
| 554년 | 양서(梁書) 본기 | 위군이 강릉 외곽 목책 아래에 이름 |
| 554년 | 양서(梁書) 본기 | 서위가 원제를 죽여 47세로 붕어 |
| 554년 | 남사(南史) 본기 | 江陵이 西魏의 대공세에 西門 수졸이 배반해 성이 떨어지고 元帝가 사로잡힘 |
| 554년 | 남사(南史) 본기 | 西魏가 元帝를 살해 |
| 554년 | 주서(周書) 제기 | 于謹 등이 5만으로 江陵을 쳐 하루 만에 함락, 梁元帝를 잡아 죽이고 사민 10여만을 노비로 끌고 옴 |
| 587년 | 북사(北史) 본기 | 後梁을 폐하고 江陵을 사면, 蕭琮을 柱國·莒國公으로 삼음 |
| 587년 | 진서(陳書) 본기 | 後梁 蕭琮의 신하 蕭巖·蕭瓛이 荊州刺史 陳紀에게 항복을 청하고 문무 남녀 10여만 명이 長江을 건너옴 |
| 587년 | 남사(南史) 본기 | 後梁 太傅 蕭岩·荊州刺史 蕭瓛이 陳 荊州刺史 陳慧紀에게 항복을 청하고 문무관 가족을 데리고 長江을 건넘 |
| 587년 | 수서(隋書) 제기 | 梁나라를 폐하고 江陵에 특별 사면, 梁主 蕭琮을 柱國·莒國公으로 봉함 |
| 756년 | 신당서(新唐書) 본기 | 永王 璘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서인으로 폐해짐 |
| 879년 | 신당서(新唐書) 본기 | 黃巢가 江陵을 함락(이후 荊門에서 패퇴) |
| 907년 | 구오대사(舊五代史) 본기 | 周汭의 수군이 鄂 경계에 이르자 朗州가 맹약을 어기고 江陵의 빈틈을 틈타 군을 풀어 습격해 약탈함 |
| 927년 | 구오대사(舊五代史) 본기 | 壬寅 荊南節度使 南平王 高季興의 관작을 삭탈하라는 制를 내림 |
| 927년 | 자치통감 | 唐 劉訓의 군이 荊南에 이르고 楚 許德勳이 水軍을 岳州에 둠 |
| 929년 | 자치통감 | 高從誨가 荊南 행군사마·歸州刺史를 자칭하며 상표해 내부 요청 |
| 1275년 | 송사(宋史) 본기 | 경호선무 주사손·호북제치부사 고달이 강릉을 바치며 항복, 경호북로가 잇따라 항복 |
| 1275년 | 원사(元史) 본기 | 아리해아가 강릉에 들어가 길을 나눠 사신을 보내 미항복 주군을 초유 |
| 1352년 | 원사(元史) 본기 | 중흥로가 함락되고 산남선위사 동지 월고륜실이 출전했으나 군이 무너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