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66년 ~ 229년, 사건 158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166년 ~ 229년 |
| 사건 수 | 사건 158건 · 지도에 놓은 124건 |
| 저자 | Cassius Dio |
| 원제 | Ῥωμαϊκὰ (Cassius Dio, Roman History) |
지역 분포: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89 · 서아시아 53 ·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11 · 이집트·북아프리카 5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66년 ~ 167년 | Pannonia | 롱고바르디·오비 6천이 이스테르(다뉴브)를 건넜으나 기병과 보병에 완패 — 마르코만니가 판노니아 총독 이알리우스 바수스에게 사절을 보내 서약하고 화평 | 72(71).3.1 |
| 169년 ~ 170년 | 라인 건너 게르만인이 이탈리아까지 쳐들어와 피해 — 마르쿠스가 폼페이아누스와 페르티낙스를 보내 격퇴, 페르티낙스가 이름을 떨침 | 72(71).3.2 | |
| 171년 ~ 172년 | Dacia (province) | 아스팅기족이 족장 라우스·랍투스 아래 가솔을 데리고 다키아로 들어와 돈과 땅을 구함 — 거절되자 코스토보키를 정복하고 다키아를 해침, 라크링기족이 처자 맡은 클레멘스를 기습해 대승 | 72(71).12 |
| 172년 ~ 173년 | Pannonia | 마르쿠스가 판노니아에 머물며 야만족 사절을 받음 — 쾨디족 화평(포로 1만3천 반환), 바타리우스 소년 부족과 동맹, 시장 출입은 불허 | 72(71).11 |
| 172년 ~ 173년 | Ravenna | 이탈리아에 정착시킨 야만인들이 라벤나에서 봉기해 도시를 장악 — 마르쿠스는 이후 야만인을 다시 이탈리아에 들이지 않고 기존 이주자도 추방 | 72(71).11 |
| 172년 ~ 173년 | Pannonia | 마르코만니가 한 전투에서 이겨 근위대장 마르쿠스 빈덱스 전사 — 마르쿠스가 동상 셋을 세워 주고, 적을 이긴 뒤 「게르마니쿠스」 칭호를 받음 | 72(71).3.5 |
| 172년 | 이집트 목동(부콜리) 반란 — 사제 이시도로스 지휘 아래 이집트인을 선동 | 72(71).4.1 | |
| 172년 | Alexandria | 부콜리가 로마군을 격파하고 알렉산드리아를 거의 함락 — 시리아에서 온 카시우스가 그들을 갈라놓아 평정 | 72(71).4.2 |
| 172년 | 쾨디족이 로마군을 갈증과 더위로 포위 — 갑자기 폭우와 우박·벼락이 내려 로마가 구원됨(이집트 마법사 아르누피스 설 / 기독교 군단 설) | 72(71).8 | |
| 172년 | 폭우의 승리 뒤 마르쿠스가 병사들에게 일곱 번째 임페라토르로 환호받음 — 원로원 전례를 어기고 선물로 받아들여 보고서를 보냄 | 72(71).10 | |
| 173년 ~ 174년 | 얼어붙은 이스테르 위에서 이아쥐게스를 로마군이 격파 — 방패에 발을 올려 미끄럼을 막고 레슬링 하듯 싸움 | 72(71).7 | |
| 174년 ~ 175년 | Pannonia | 마르코만니가 조건을 다 이행하자 마르쿠스가 국경 중립지대 절반을 돌려주고 교역 장소·날짜 정하고 인질 교환 | 72(71).15 |
| 175년 | 이아쥐게스 패배 — 왕 잔티쿠스가 탄원자로 마르쿠스 앞에 나와 쾨디·마르코만니와 같은 조약, 포로 10만 반환과 기병 8천 제공 | 72(71).16 | |
| 175년 | Syria (Roman province) | 시리아에서 카시우스 반란 — 마르쿠스가 놀라 아들 콤모두스를 로마에서 불러 성년복을 입힘; 파우스티나의 부추김 | 72(71).22.1 |
| 175년 | Syria (Roman province) | 마르쿠스 사망 오보에 카시우스가 곧바로 제위를 선언 — 진실을 알고도 타우루스 이남을 급속히 장악 | 72(71).23.1 |
| 175년 | Pannonia | 마르쿠스가 병사들에게 카시우스 반란을 알리는 연설 — 분노가 아니라 운명을 한탄하고 카시우스를 용서하겠다고 말함 | 72(71).24 |
| 175년 | 카시우스가 도보 중 백인대장 안토니우스에게 목을 베여 죽음 — 목이 잘려 황제에게 보내짐(반란 3개월 6일) | 72(71).27.2 | |
| 175년 | 마르쿠스가 카시우스의 잘린 머리를 보려 하지 않고 묻으라 명령 | 72(71).28 | |
| 175년 ~ 176년 | 황후 파우스티나 사망 — 통풍 때문이라 하나 카시우스와의 공모가 드러날 것을 피한 죽음이라고도 함 | 72(71).29 | |
| 176년 | Athenae | 마르쿠스가 아테네에서 비교(秘敎)에 입문, 아테네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모든 학문의 교사에게 국가 봉급을 주는 자리를 세움 | 72(71).31.3 |
| 176년 | Roma | 마르쿠스가 로마로 돌아와 연설 — 8아우레우스를 외치는 군중에게 8백 세스테르티우스씩 주고 45년치 국고 채무 증서를 포룸에서 소각 | 72(71).32 |
| 177년 | Smyrna | 지진으로 크게 파괴된 스미르나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금전을 하사하고 재건을 법무관급 원로원 의원에게 맡김 | 72(71).32.3 |
| 177년 | Roma | 스키타이(북방) 사정이 다시 급해져 마르쿠스가 아들 콤모두스를 서둘러 크리스피나와 혼인시킴 | 72(71).33.1 |
| 178년 | Roma | 마르쿠스가 벨로나 신전의 피 묻은 창을 던지는 의례 뒤 출정 — 파테르누스에게 대군을 주어 전선에 보내고 열 번째 임페라토르 환호 | 72(71).33.3 |
| 179년 | 이아쥐게스 사절이 협약 일부 면제를 청해 일부 양보 — 부리족과 함께 마르쿠스가 끝까지 싸우겠다는 보증 요구 | 72(71).18 | |
| 179년 | 쾨디가 요새 감시를 견디지 못하고 세므노네스 땅으로 집단 이주 시도 — 마르쿠스가 길을 막아 저지 | 72(71).20 | |
| 180년 | 마르쿠스 사망(3월 17일) — 의사들이 콤모두스에게 잘 보이려 죽였다고 전해 들음; 임종 암호는 「떠오르는 해에게 가라, 나는 이미 지고 있다」 | 72(71).33 | |
| 180년 | 콤모두스가 후견인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야만족과 휴전한 뒤 로마로 서둘러 감 | 73(72).1.2 | |
| 180년 | 마르코만니가 기근과 인구 감소로 사절을 보내자 콤모두스가 쉽게 멸할 수 있었음에도 화평 — 도피자·포로 반환, 군대 제공, 한 달에 한 번 백인대장 입회 하 회합 | 73(72).2 | |
| 180년 | Dacia (province) | 콤모두스가 부리족에게 화평 허락 — 인질과 포로를 받고 다키아 변경 5마일 띠 비우기를 맹세시킴; 쫓겨난 다키아인 1만2천을 사비니아누스가 달램 | 73(72).3 |
| 181년 | Roma | 콤모두스가 로마에 와 원로원에서 사소한 말을 늘어놓음 — 아버지를 진창에서 구했다는 허풍 | 73(72).4.2 |
| 182년 | Roma | 원형경기장 입구에서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루킬라의 연인)가 콤모두스를 칼로 노리고 「이것이 원로원이 보낸 칼이다」 — 루킬라가 꾸민 일, 암살 실패 | 73(72).4.4 |
| 182년 ~ 183년 | Capreae | 콤모두스가 크리스피나를 간통으로, 루킬라를 암살 모의로 카프리 섬에 유배했다가 처형 | 73(72).4.6 |
| 182년 ~ 183년 | 콤모두스가 학식·무공·형제애로 이름난 퀸틸리우스 형제 콘디아누스와 막시무스를 한 아들과 함께 살해 | 73(72).5.3 | |
| 183년 ~ 185년 | Roma | 콤모두스가 살비우스 율리아누스·타루테니우스 파테르누스와 한 귀부인 등 많은 이를 살해 — 율리아누스는 대군을 갖고도 반란을 꾸미지 않았음 | 73(72).5.1 |
| 183년 | Syria (Roman province) | 막시무스의 아들 섹스투스 콘디아누스가 시리아에서 사형 소식을 듣고 토끼 피를 토한 뒤 죽은 척하고 양의 시체를 대신 태우고 도주 — 가짜 행세자도 훗날 나타남 | 73(72).6.1 |
| 183년 ~ 184년 | Mallus (Mallos) | 킬리키아 총독인 아버지를 따라간 디오가 말로스의 암필로코스 꿈 신탁소에서 섹스투스가 그린 그림(소년이 뱀 둘을 목 조르고 사자가 사슴을 쫓는 그림)의 뜻을 알게 됨 | 73(72).7.1 |
| 184년 | Dacia (province) | 다키아 너머 야만족과의 전쟁 — 후일 세베루스와 싸울 알비누스·니게르가 명성을 얻음 | 73(72).8.1 |
| 184년 | Britannia (province) | 브리타니아 부족이 장벽을 넘어 약탈하고 한 장군과 부대를 몰살 — 콤모두스가 놀라 울피우스 마르켈루스를 보냄 | 73(72).8.2 |
| 185년 | Roma | 브리타니아 군단이 1천5백 창병을 이탈리아로 보내 페렌니스를 고발 — 콤모두스가 그들 앞에 근위대장을 넘김 | 73(72).9.2 |
| 185년 | Roma | 근위대장 페렌니스가 병사들 손에 구타·살해, 처자와 누이까지 죽음 | 73(72).9.4 |
| 189년 ~ 190년 | Roma | 로마에 역병 — 하루 2천 명이 죽은 날도 있었고, 독 바늘로 사람을 감염시키는 범죄자도 제국 전역에서 활동 | 73(72).14.3 |
| 190년 | Roma | 기근 때 서커스에서 소녀 인솔의 아이들 외침으로 폭동, 콤모두스가 접에 질려 클레안데르와 그 아들을 죽이게 하고 군중이 시신을 끌고 다님 | 73(72).13.6 |
| 190년 | Emesa | 율리우스 알렉산데르가 암살자들을 밤에 처치하고 고향 에메사의 적들도 죽인 뒤 야만족에게 도주하다 소년 애인 때문에 따라잡혀 자결 | 73(72).14.2 |
| 191년 ~ 192년 | Roma | 콤모두스가 로마를 「콤모디아나」, 군단을 「콤모두스 군단」으로 개명하고 헤라클레스를 자칭, 열두 달 이름까지 자기 칭호로 바꿈 | 73(72).15.2 |
| 191년 | Roma | 콤모두스 사망 전조 — 평화 신전 부근 밤 화재가 번져 궁전 일부와 국가 기록 대부분이 소실 | 73(72).24.1 |
| 192년 | Roma | 콤모두스가 원형경기장에서 14일 연속 구경거리 — 첫날 혼자 곰 1백 마리를 사살하고 디오 등 원로원이 지켜봄 | 73(72).18.1 |
| 192년 | Roma | 라이투스·에클렉토스·마르키아가 독살에 실패하자 운동선수 나르키소스에게 욕조에서 콤모두스를 교살하게 함(12년 9개월 14일 재위) | 73(72).22.5 |
| 193년 | Roma | 페르티낙스가 비밀리에 근위대 막사로 가 1인당 1만2천 세스테르티우스를 약속하고 밤에 원로원에서 「병사들이 나를 황제로 부르지만 사임하겠다」고 선언 — 원로원이 진심으로 추대 | 74(73).1 |
| 193년 | Roma | 페르티낙스가 황제로, 콤모두스는 공적(公敵)으로 선언 — 시신을 찢으려던 군중은 이미 묻혔다는 말에 동상만 훼손 | 74(73).2 |
| 193년 | Roma | 국고에 백만 세스테르티우스뿐 — 페르티낙스가 콤모두스의 조상·무기·가구·총애자를 팔아 근위대에 약속금, 시민에게 1인 1백 데나리우스 | 74(73).5 |
| 193년 | Roma | 근위대와 라이투스가 집정관 팔코를 황제로 세우려는 음모 — 페르티낙스가 곡물 시찰에서 돌아와 원로원에 알리고 팔코의 목숨을 살림 | 74(73).8 |
| 193년 | Roma | 병사 2백이 궁에 난입 — 페르티낙스는 설득하려 나갔다가 살해, 에클렉토스만 곁에서 싸우다 죽음(67세 가까이, 재위 87일) | 74(73).10 |
| 193년 | Roma | 근위대 막사 앞에서 제국 경매 — 율리아누스가 1인당 2만5천 세스테르티우스를 불러 술피키아누스를 이기고 황제로 받아들여짐 | 74(73).11 |
| 193년 | Roma | 서커스에서 군중이 밤낮 율리아누스를 규탄하며 시리아의 니게르에게 구원을 외침 | 74(73).13.5 |
| 193년 | 세 사령관 세베루스(판노니아)·니게르(시리아)·알비누스(브리타니아)가 각 3개 군단으로 패권을 노림 — 율리아누스 제사 때 해 둘레에 별 셋이 나타난 징조 | 74(73).14.3 | |
| 193년 | 세베루스가 알비누스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보내 달래고 비잔티움을 뺀 유럽을 장악한 채 로마로 진군, 정예 6백을 밤낮 곁에 둠 | 74(73).15 | |
| 193년 | Roma | 율리아누스가 원로원에 세베루스를 공적으로 선언하게 하고 교외에 방벽을 쌓아 도시가 진영으로 변함(코끼리·미세눔 수병 동원) | 74(73).16.1 |
| 193년 | Ravenna | 세베루스가 이탈리아에 이르러 싸우지 않고 라벤나를 차지함 | 74(73).16.5 |
| 193년 | Roma | 병사들이 페르티낙스 살해자들을 체포하고 원로원이 율리아누스를 사형 선고, 세베루스를 황제로 추대 — 율리아누스는 궁에서 살해(66일 재위) | 74(73).17 |
| 193년 | Roma | 세베루스가 로마에 들기 전에 페르티낙스 살해 근위대를 포위해 무장·말을 빼앗고 로마에서 추방 | 75(74).1 |
| 193년 | Roma | 세베루스가 성문까지 기병복, 이후 도보 시민복으로 입성 — 꽃과 월계수로 장식된 도시, 전군이 무장행진 | 75(74).1.3 |
| 193년 | Roma | 세베루스가 포룸에서 페르티낙스의 밀랍상 장례를 치러 신격화 — 마르스 광장 3층 화장대에 불을 붙이자 독수리가 날아오름 | 75(74).4 |
| 193년 ~ 194년 | Perinthus | 세베루스와 니게르 전쟁 개시 — 니게르는 비잔티움에서 페린토스로 진군했으나 불길한 징조로 비잔티움으로 되돌아감 | 75(74).6.3 |
| 193년 ~ 196년 | Byzantium | 비잔티움이 3년간 세계의 군대에 포위되어 버팀 — 잠수부로 닻줄을 끊고 적선을 끌어오는 등 기발한 방어 | 75(74).12.1 |
| 194년 | Cyzicus | 세베루스 장군들이 키지코스 근처에서 니게르의 부관 아이밀리아누스를 격파·살해 | 75(74).6.4 |
| 194년 | Nicaea (Bithynia) | 니카이아·키오스 사이 좁은 길에서 큰 전투 — 칸디두스가 먼저 이기나 니게르가 나타나 역전, 칸디두스가 다시 돌려세워 우세 | 75(74).6.4 |
| 194년 | Issus | 킬리키아 관문 부근 이수스에서 대전투 — 니게르 군이 우세했으나 폭풍이 얼굴을 치고 발레리아누스가 뒤를 쳐 패주 | 75(74).7.1 |
| 194년 | Issus | 이 전투가 전쟁 최대의 참사 — 니게르 군 2만이 전사 | 75(74).8.1 |
| 194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안티오키아가 함락되고 니게르는 유프라테스로 달아나다 추격자에게 목이 잘림 — 머리는 비잔티움에 보내 장대에 걺 | 75(74).8.3 |
| 194년 | 세베루스가 니게르 가담 도시와 개인을 벌함 — 원로원 의원은 죽이지 않고 재산 몰수·섬 유배, 이들이 니게르에게 준 액수의 네 배를 거둠 | 75(74).8.4 | |
| 195년 ~ 196년 | Byzantium | 굶주린 비잔티움 주민이 폭풍을 틈타 배로 달아났으나 로마군이 해상 학살 — 바다가 시체·잔해로 덮임 | 75(74).13.2 |
| 195년 | 세베루스가 유프라테스를 건너 적지로 들어가 갈증·먼지폭풍으로 병사를 거의 잃을 뻔함 — 직접 물을 마셔 사기를 살림 | 75(75).2.1 | |
| 195년 | Nisibis | 세베루스가 니시비스에서 주둔하며 장군들을 보내 오스로에네·아디아베네·아랍의 땅을 약탈 | 75(75).2.3 |
| 195년 | Nisibis | 세베루스가 니시비스에 지위를 주고 기사 신분 총독에게 맡김 — 시리아의 방벽을 더했다고 자랑했으나 디오는 끝없는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비판 | 75(75).3.2 |
| 196년 | Byzantium | 비잔티움 항복 — 군인·관리 처형, 도시의 독립을 빼앗아 페린토스에 예속, 성벽 헐음(디오가 무너진 성벽을 직접 봄) | 75(74).14 |
| 196년 | Roma | 사투르날리아 직전 마지막 경마에서 군중이 일제히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고 언제까지 전쟁을 하나」 외침 — 하늘의 불·은빛 비 등 불길한 징조 | 76(75).4.2 |
| 196년 | 학교 교사 누메리아누스가 원로원 의원 행세를 하며 갈리아에서 군대를 모아 알비누스 기병을 죽이고 7천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세베루스에게 보냄 | 76(76).5.1 | |
| 196년 ~ 197년 | 알비누스가 앞선 전투에서 세베루스의 장군 루푸스를 격파하고 많은 병사를 죽임 | 76(76).6.2 | |
| 197년 | Lugdunum (Lyon) | 세베루스와 알비누스가 루그두눔 근처에서 각 15만 병력으로 사생결단 — 두 지도자가 모두 전장에 나섬 | 76(76).6.1 |
| 197년 | Lugdunum (Lyon) | 알비누스 우익의 함정(감춘 도랑)에 세베루스 군이 빠져 대패 직전 — 세베루스가 말을 잃고 칼을 뽑아 병사를 되돌려 세우고 라이투스 기병이 마무리 | 76(76).6.6 |
| 197년 | Lugdunum (Lyon) | 알비누스가 론 강가의 집에 숨었다가 포위되자 자결 — 세베루스는 머리를 로마에 장대에 달아 보냄 | 76(76).7.3 |
| 197년 | Roma | 세베루스가 술라·마리우스·아우구스투스의 가혹함을 칭송하고 콤모두스를 변호하는 연설 뒤 알비누스 편 35인을 풀어 주고 29인(페르티낙스의 장인 술피키아누스 포함)을 사형 | 76(76).8 |
| 197년 ~ 198년 | Britannia (province) | 카레도니아가 약속을 안 지키고 마이아타이를 도우려 하자 세베루스가 다른 전쟁에 몰두한 사이 루푸스가 큰돈으로 마이아타이에게 평화를 사고 포로 몇을 돌려받음 | 76(75).5.4 |
| 197년 ~ 198년 | Nisibis | 세베루스의 파르티아 원정 — 파르티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점령하고 니시비스 포위에서 라이투스가 구함; 세베루스가 니시비스에서 거대한 멧돼지를 봄 | 76(75).9.1 |
| 198년 | 세베루스가 유프라테스에서 배를 건조해 일부는 승선, 일부는 강변을 따라 행군 | 76(75).9.3 | |
| 198년 | Seleucia on the Tigris | 파르티아군이 버린 셀레우키아와 바빌론을 세베루스가 차지 | 76(75).9.3 |
| 198년 | Babylon | 바빌론도 방기된 채 세베루스에게 넘어감 | 76(75).9.3 |
| 198년 | Ctesiphon | 세베루스가 크테시폰을 점령해 약탈·학살, 포로 10만 — 볼로가이소스는 추격하지 않고 보급 부족으로 철수 | 76(75).9.4 |
| 198년 | Hatra | 세베루스가 메소포타미아를 가로질러 하트라를 공격했으나 공성기가 불타고 많은 병사를 잃어 철수 | 76(75).10.1 |
| 198년 ~ 202년 | Tyana | 플라우티아누스가 타이아나에서 병들었을 때 그의 병사들이 황제의 수행원 입장을 막음 — 황제가 그에게 눌려 지낸 일화 | 76(75).15.4 |
| 199년 | Hatra | 세베루스가 식량과 공성기를 대규모로 준비해 하트라 재공격 — 아랍 기병과 비튜멘(나프타) 공격으로 공성기와 병사를 대량 잃음 | 76(75).11 |
| 199년 | Hatra | 성벽 일부가 무너져 병사들이 돌입하려 하자 세베루스가 퇴각 신호를 울림 — 이튿날 다시 공격 명령했으나 유럽 병사들이 거부, 시리아 병사만 희생 | 76(75).12.1 |
| 199년 | 20일 포위 뒤 팔레스티나로 가 폼페이우스 혼령에게 제사 | 76(75).13.1 | |
| 199년 ~ 200년 | Alexandria | 세베루스가 나일을 거슬러 올라 이집트를 시찰하고 신전의 비서(秘書)를 거둬들이며 알렉산드로스 무덤을 봉쇄 | 76(75).13.2 |
| 202년 | Roma | 세베루스 재위 10주년 — 시민·근위대에게 재위 햇수만큼 금화를 주고 안토니누스와 플라우틸라의 혼례, 7일간 맹수 7백 마리 사냥 구경거리 | 77(76).1.1 |
| 203년 ~ 204년 | Vesuvius | 베수비오 화산이 크게 불을 뿜고 포효가 디오가 이탈리아에서 사는 카푸아까지 들림 — 곧 플라우티아누스의 몰락 | 77(76).2.1 |
| 205년 | Roma | 안토니누스가 꾸민 음모 고발로 부름받은 플라우티아누스가 궁에서 살해, 시신은 거리에 던져졌다가 세베루스 명령으로 매장 | 77(76).4.5 |
| 205년 | Lipara | 플라우티아누스의 자녀 플라우틸라와 플라우티우스가 리파라 섬으로 유배(카라칼라 때 처형) | 77(76).6.3 |
| 205년 ~ 207년 | 불라가 6백 도적떼로 2년간 이탈리아를 약탈하며 잡히지 않다 한 기사의 정부 덕에 동굴에서 체포 — 「왜 도적이 됐나」「너는 왜 근위대장이냐」 | 77(76).10.1 | |
| 208년 | Britannia (province) | 세베루스가 아들들의 방탕과 군단의 나태를 보고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브리타니아 원정을 떠남 | 77(76).11.1 |
| 209년 | Caledonia (region) | 세베루스가 칼레도니아에 침입 — 숲을 베고 늪을 메우며 진군했으나 적은 양떼를 미끼로 던져 지치게 하고 5만이 죽음 | 77(76).13.1 |
| 210년 | Britannia (province) | 세베루스가 섬 끝까지 가서 하지·동지 일조를 관측하고 되돌아와 브리튼이 영토 상당 부분을 내놓는 조건으로 화평 | 77(76).13.4 |
| 210년 | Caledonia (region) | 칼레도니아와 휴전 협의를 하러 가던 길에서 안토니누스가 아버지 등 뒤에서 칼을 빼려다 일행의 외침에 멈춤 — 세베루스는 아들을 처벌하지 않음 | 77(76).14.4 |
| 211년 | Britannia (province) | 브리튼이 다시 반란하고 칼레도니아가 마이아타이에 합류하자 직접 싸울 준비 중 2월 4일 병사 — 안토니누스의 도움이 있었다고도 함 | 77(76).15.2 |
| 211년 | Britannia (province) | 안토니누스가 적과 화평하고 영토를 비우고 요새를 버림 — 파피니아누스를 해임하고 에우오도스·카스토르·플라우틸라 등을 죽임 | 78(77).1.1 |
| 211년 | Roma | 안토니누스가 어머니 거처로 불러 화해시키려는 척 동생 게타를 데려가 백인대장들이 어머니 품 안에서 게타를 살해(22세 9개월) | 78(77).2.2 |
| 211년 ~ 212년 | Roma | 안토니누스가 막사로 달려가 병사들에게 약속을 쏟은 뒤 게타 편 해방노예·병사 약 2만 명(남녀)을 궁에서 죽이고 파피니아누스 등 명사를 살해 | 78(77).4.1 |
| 213년 | 알라마니 원정 — 마음에 드는 터마다 자기 이름으로 성채·도시를 세우라 명하고, 용병으로 소집한 장정들을 방패 신호로 둘러싸 학살 | 78(77).13.4 | |
| 213년 | 게르만 켄니족과 전쟁 — 포로가 된 여자들은 팔리자 자결하고 아이도 죽임; 켄니는 큰돈을 받고 패배를 인정 | 78(77).14.1 | |
| 214년 | Ilium/Troia | 안토니누스가 트라키아를 지나 헬레스폰토스를 위험하게 건너 아킬레우스 무덤에서 제사와 무장 경주를 열고 병사에게 금을 줌; 동상을 세움 | 78(77).16.7 |
| 214년 | Pergamum | 안토니누스가 페르가몬에 도착해 「아우소니아의 짐승이 텔레포스 땅에 들어오리라」는 시구가 신탁이라며 기뻐하고 사람을 대량 처형 | 78(77).16.8 |
| 214년 ~ 215년 | Nicomedia | 안토니누스가 니코메디아 월동 중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를 훈련하고 아르메니아·파르티아 원정용 분해식 공성기 두 대를 만듦 | 78(77).18.1 |
| 215년 | 파르티아 원정 구실 — 볼로가이소스가 티리다테스와 안티오코스(키니크 철학자 행세 킬리키아인)의 인도를 거절 | 78(77).19.1 | |
| 215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안토니누스가 안티오키아에서 호사를 누리며 원로원이 무기력하다고 꾸짖는 편지 — 「내게는 무기와 병사가 있다」 | 78(77).20.1 |
| 215년 | Armenia (region) | 파르티아 왕이 두려워 티리다테스·안티오코스를 넘기자 원정을 해산 — 아르메니아에 보낸 해방노예 장군 테오크리토스가 크게 패배 | 78(77).21.1 |
| 215년 ~ 216년 | Alexandria | 안토니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와 교외에서 영접한 유력 시민을 환대하는 척 연회를 열고 죽인 뒤 전군을 도시에 풀어 학살 | 78(77).22.2 |
| 215년 ~ 216년 | Alexandria | 학살이 밤낮 도시 전역에서 이어져 사망자 수를 원로원에 숨김 — 외지인과 수행자도 희생, 신전도 약탈 | 78(77).22.3 |
| 215년 ~ 216년 | Alexandria | 안토니누스가 세라피스 신전에서 학살을 지휘하고 형 살해에 쓴 칼을 신에게 바침 — 알렉산드리아의 구경거리와 공동 식사를 폐지하고 도시를 가로벽으로 나눔 | 78(77).23.3 |
| 216년 | 파르티아 원정 — 아르타바노스가 딸을 주지 않았다는 구실; 실은 파르티아 왕국을 노린 것 | 79(78).1.1 | |
| 216년 | Arbela (Assyria) | 안토니누스가 메디아 일대를 기습으로 약탈하고 요새 여럿을 부수고 아르벨라를 얻고 파르티아 왕릉을 파헤쳐 유골을 흩음; 파르티아는 싸우지 않음 | 79(78).1.1 |
| 217년 | Carrhae | 4월 8일 안토니누스가 에데사에서 카르하이로 가던 길에 용변을 보러 말에서 내렸을 때 마르티알리스가 단검으로 찌르고 호위 장교들이 마저 살해 | 79(78).5.4 |
| 217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안티오키아에 있던 율리아 도무나가 아들의 죽음 소식에 가슴을 쳐 유방암이 도지고 단식으로 죽음 | 79(78).23.1 |
| 217년 | 안토니누스 사후 이틀을 비운 뒤 넷째 날(세베루스 탄신일) 메소포타미아의 병사들이 마크리누스를 황제로 추대 | 79(78).11 | |
| 217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안티오키아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병사들 사이를 지나던 디아두메니아누스가 병사에 의해 카이사르로 선포, 안토니누스 이름도 받음 | 79(78).19 |
| 217년 | Roma | 불카날리아 날 벼락이 원형경기장을 쳐 윗층과 경기장 안이 모두 불타고 수도관을 비워도 못 껐음 — 같은 날 테베레 범람 | 79(78).25.2 |
| 217년 | Nisibis | 아르타바노스가 메소포타미아를 침공 — 마크리누스가 니시비스 쪽으로 진군하다 수원 다툼으로 시작된 전투에서 패배, 진영은 짐꾼들이 구함 | 79(78).26 |
| 217년 ~ 218년 | 마크리누스가 아르타바노스와 측근에게 2억 세스테르티우스를 선물·금으로 주고 평화를 삼 — 원로원에는 전모를 알리지 않고 승전 제사를 받음 | 79(78).27.1 | |
| 218년 | Armenia (region) |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가 마크리누스가 보낸 왕관을 받고 카라칼라가 11개월 가둔 어머니와 노획물을 돌려받아 전쟁 종결 | 79(78).27.4 |
| 218년 | Emesa | 5월 16일 새벽 마에사 일가가 열세 살 아비투스를 카라칼라의 서자로 속여 병영에 데려가 병사들을 반란 시킴 | 79(79).31 |
| 218년 | Emesa | 근위대장 율리아누스가 병영을 공격했으나 모병들이 장교들을 죽이고 가짜 안토니누스에게 투항 | 79(79).32 |
| 218년 | Apamea (Syria) | 마크리누스가 아파메아의 알바 군단에 가 아홉 살 아들을 공동 황제로 세우고 4천 세스테르티우스씩 나눠 줌 — 반란군 머리가 가짜임을 알고 안티오키아로 퇴각 | 79(79).34 |
| 218년 | 이집트 총독 바실리아누스가 가짜 안토니누스의 사자들을 죽임 — 마크리누스 패배 소식에 폭동으로 민간인·병사가 다수 죽고 바실리아누스는 달아나 브룬디시움 근처에서 붙잡힘 | 79(79).35 | |
| 218년 | Antioch on the Orontes | 6월 8일 안티오키아인 마을(도시에서 24마일)에서 마크리누스가 패배 — 근위대는 우세했으나 마에사·소아이미아스가 달아나는 병사를 되돌려 세워 역전 | 79(79).37 |
| 218년 | Antioch on the Orontes | 패배한 마크리누스가 머리와 턱수염을 밀고 밤에 말을 타고 안티오키아에서 달아나 아이가이·카파도키아·갈라티아·비티니아를 거침 | 79(79).39 |
| 218년 | Chalcedon | 마크리누스가 칼케돈에서 돈을 청하다 신분이 드러나 체포 — 백인대장 아우렐리우스 켈수스가 붙잡아 카파도키아까지 끌고 감 | 79(79).39 |
| 218년 | Zeugma | 제우그마를 지나던 마크리누스의 아들이 백인대장 클라우디우스 폴리오에게 체포됨 | 79(79).40 |
| 218년 | 마크리누스가 안티오키아 입성 전 백인대장 마르키아누스 타우루스에게 참수 — 시신은 가짜 안토니누스가 지나며 조롱할 때까지 매장되지 않음 | 79(79).40 | |
| 218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아비투스(가짜 안토니누스)가 승리 이튿날 안티오키아에 입성 — 약탈을 막는 대가로 병사에게 2천 세스테르티우스씩 약속, 원로원에 마크리누스를 헐뜯는 서한 | 80(79).1.1 |
| 218년 ~ 219년 | Cyprus (island) | 엘라가발루스가 시리아·아라비아·키프로스에서 마크리누스 측 인사를 처형 — 키프로스 총독 클라우디우스 아탈루스는 코마존의 앙심 때문에 죽음 | 80(79).3.5 |
| 219년 | Nicomedia | 엘라가발루스가 안티오키아에서 몇 달 머문 뒤 비티니아(니코메디아)로 가 겨울을 나고, 이 겨울 가니스를 직접 찔러 죽임 | 80(79).3.1 |
| 219년 | Cyzicus | 니코메디아 월동 때 키지코스 주둔 함대에 반란을 꾀한 평민 등 여러 군단 반란 시도 — 디오는 페르가몬 총독일 때 직접 조사 | 80(79).7.3 |
| 219년 | Thracia | 엘라가발루스가 겨울을 난 뒤 트라키아·모이시아·두 판노니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가서 죽을 때까지 머묾 — 마크리누스 서한 때문에 모욕한 이들에게 보복하지 않음 | 80(79).3.2 |
| 219년 ~ 220년 | Roma | 엘라가발루스 숭배 — 신을 유피테르보다 앞세우고 스스로 사제가 되어 할례와 돼지고기 금기를 지켜 「아시리아인」이라 불림 | 80(79).11.1 |
| 220년 | Roma | 엘라가발루스가 코르넬리아 파울라와 혼인(잔치·검투·호랑이 51마리 도살) 뒤 이혼하고 베스타 여사제 아퀼리아 세베라와 동거 | 80(79).9.1 |
| 220년 ~ 221년 | Roma | 엘라가발루스가 신 엘라가발루스의 아내로 카르타고의 우라니아를 불러 궁에 두고 혼례 선물을 거둠 | 80(79).12 |
| 221년 | Roma | 엘라가발루스가 사촌 바시아누스를 원로원에 데려와 마에사·소아이미아스를 양옆에 두고 양자로 삼고 신의 명이라며 알렉산데르로 개명 | 80(79).17.2 |
| 221년 ~ 222년 | Thracia |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닮은 영(靈)이 이스테르 연안에서 나타나 남자 4백 명의 티르소스 행렬과 함께 모이시아·트라키아를 낮에 지나 비잔티움까지 감 — 관리·병사 누구도 막지 않음 | 80(79).18.1 |
| 221년 ~ 222년 | Chalcedon | 알렉산드로스의 영이 배로 칼케돈 영토에 상륙해 밤 의례를 하고 목마를 묻은 뒤 사라짐 | 80(79).18.3 |
| 222년 | Roma | 엘라가발루스가 알렉산데르를 해치려다 근위대 소요 — 병영에서 상자에 숨어 달아나려다 발각되어 18세에 살해, 어머니도 함께 죽고 시신은 끌려다니다 테베레에 던져짐 | 80(79).20.2 |
| 222년 | Roma | 알렉산데르가 곧바로 황제가 되어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에게 근위대와 제국 업무를 맡김 | 80(80).1.1 |
| 223년 | Roma | 울피아누스가 플라비아누스·크레스투스를 죽이고 그 자리를 이었으나 곧 근위대에게 밤에 공격받아 궁으로 도망쳤으나 살해 | 80(80).2.2 |
| 223년 | Roma | 울피아누스 생전에 시민과 근위대가 사소한 일로 사흘간 시가전 — 병사들이 건물에 불을 지르려 하자 시민이 화평 | 80(80).2.3 |
| 226년 ~ 229년 | Hatra |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세 번의 전투에서 파르티아를 이기고 왕 아르타바노스를 죽인 뒤 하트라를 공격 — 성벽을 허물었으나 복병에 병사를 잃고 메디아로 감 | 80(80).3.2 |
| 226년 ~ 229년 | Armenia (region) |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메디아·파르티아를 상당 부분 얻고 아르메니아로 갔다가 원주민·메디아인·아르타바노스의 아들들에게 패배 — 달아났거나 더 큰 원정을 준비 | 80(80).3.3 |
| 226년 ~ 229년 | Mesopotamia (region) | 메소포타미아 주둔군이 사령관 플라비우스 헤라클레오를 살해 — 군 규율 붕괴로 일부 병사는 페르시아에 합류 | 80(80).4.2 |
| 229년 | 알렉산데르가 디오를 두 번째 집정관으로 삼고 근위대의 위협 때문에 임기를 로마 밖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함 | 80(80).5.1 | |
| 229년 | 디오가 발 질환을 이유로 면직을 청해 고향(비티니아)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작정으로 떠남 — 책을 이 시구로 맺음 | 80(80).5.2 |
Cassius Dio, Roman History, tr. Earnest Cary (Loeb, 1927); text by Bill Thayer, LacusCurtius
PD (Loeb Cary 1927, LacusCurtius 명시)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Cassius_Dio/hom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