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1년
사망 223년 — 장무 3년 4월 영안(백제성)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84년 | 탁군 | 의병(탁군) | 추정 |
| 193년 | 평원 | 평원상 | 추정 |
| 194년 | 소패 | 예주자사 → 서주목 | 기록 |
| 195년 | 하비 | 서주목 | 기록 |
| 196년 | 소패 | 예주자사 | 기록 |
| 197년 | 소패 | 예주자사 | 추정 |
| 198년 | 하비 | 좌장군 | 기록 |
| 199년 | 하비 | 좌장군 | 기록 |
| 200년 | 소패 | 좌장군 | 기록 |
| 201년 | 여남 | (원소 휘하 → 유표에게 의탁) | 기록 |
| 202년 | 신야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추정 |
| 203년 | 신야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추정 |
| 204년 | 신야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추정 |
| 205년 | 신야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추정 |
| 206년 | 신야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추정 |
| 207년 | 신야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기록 |
| 208년 | 하구 | 좌장군 | 기록 |
| 209년 | 공안 | 형주목 | 기록 |
| 210년 | 경구 | 형주목 | 기록 |
| 211년 | 부성 | 형주목 | 추정 |
| 212년 | 가맹 | 형주목 | 기록 |
| 213년 | 낙성 | 형주목 | 기록 |
| 214년 | 성도 | 익주목 | 기록 |
| 215년 | 공안 | 익주목 | 기록 |
| 217년 | 성도 | 익주목 | 추정 |
| 218년 | 양평관 | 익주목 | 기록 |
| 219년 | 한중 | 한중왕 | 기록 |
| 220년 | 성도 | 한중왕 | 추정 |
| 221년 | 성도 | 황제 | 기록 |
| 222년 | 이릉 | 황제 | 기록 |
| 223년 | 백제성 | 황제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년 | 촉한 | 의병(탁군) | 추정 |
| 185~192년 | 촉한 | 안희위·고당령 등(연대 불명) | 불명 |
| 193년 | 촉한 | 평원상 | 추정 |
| 194년 | 촉한 | 예주자사 → 서주목 | 기록 |
| 195년 | 촉한 | 서주목 | 기록 |
| 196년 | 촉한 | 예주자사 | 기록 |
| 197년 | 촉한 | 예주자사 | 추정 |
| 198~200년 | 촉한 | 좌장군 | 기록 |
| 201년 | 촉한 | (원소 휘하 → 유표에게 의탁) | 기록 |
| 202~206년 | 촉한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추정 |
| 207년 | 촉한 | 신야 주둔(유표 휘하) | 기록 |
| 208년 | 촉한 | 좌장군 | 기록 |
| 209~210년 | 촉한 | 형주목 | 기록 |
| 211년 | 촉한 | 형주목 | 추정 |
| 212~213년 | 촉한 | 형주목 | 기록 |
| 214~215년 | 촉한 | 익주목 | 기록 |
| 216년 | 촉한 | 익주목 | 불명 |
| 217년 | 촉한 | 익주목 | 추정 |
| 218년 | 촉한 | 익주목 | 기록 |
| 219년 | 촉한 | 한중왕 | 기록 |
| 220년 | 촉한 | 한중왕 | 추정 |
| 221~223년 | 촉한 | 황제 | 기록 |
의병을 일으켜 황건 토벌에 나선다(연의의 도원결의는 정사에 없다).
정사 정사에는 도원결의 기록이 없다. 관우전은 선주(유비)가 관우·장비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은혜가 형제 같았다'고만 적는다.
연의: 연의 1회 — 연의 1회가 복숭아밭 맹세로 극화한 연의 창작 대목이다.
관련: 도원결의
관우·장비와 함께 호뢰관에서 여포를 상대한다(연의 창작).
정사 정사에 호뢰관 전투는 없다. 정사의 반동탁 전선은 손견의 양인 전투와 조조의 형양 변수 전투 정도다(손견전에 화웅이 나온다).
연의: 연의 5회 — 연의 5회가 극화한 연의 창작 대목이다.
관련: 호뢰관 삼영전
하비를 잃고 처자와 함께 소패로 물러난다.
정사 여포전·선주전: 유비가 원술과 대치하는 틈에 여포가 하비를 쳤다(장비의 부하 조표가 호응).
연의: 연의 14회 — 연의 14회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조조와 함께 하비를 쳐 여포를 꺾는다.
정사 여포전: 12월 하비를 포위해 수공 끝에 송헌·위속·후성이 진궁을 잡아 항복했다. 여포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의: 연의 19회 — 연의 19회가 '백문루'의 장면으로 극화한다. 줄거리는 대체로 같다.
관련: 하비 전투, 여포의 최후 · 하비 전투
융중으로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 천하삼분의 계책을 듣는다.
정사 제갈량전·출사표(三顧臣於草廬之中): 유비가 세 번 찾아갔다. 배송지 주 위략은 제갈량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고 전한다.
연의: 연의 37~38회 — 박망파 화공(연의 39회)은 제갈량 합류 전의 일로, 정사에 제갈량 활약은 없다.
관련: 삼고초려와 융중대
장판에서 조조에게 따라잡혀 처자를 버리고 달아난다.
정사 선주전: 조조가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아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운전: 조운이 어린 아들을 안고 감부인을 지켜 냈다. 장비전에도 장판교에서 버틴 기록이 있다.
연의: 연의 41~42회 — 연의 41~42회는 장비의 장판교 대치를 크게 부풀린다.
관련: 장판 전투와 조운의 아두 구출
연합군에 가담해 조조군을 뒤쫓는다.
정사 무제기·주유전·황개전·오주전: 적벽에서 조조군이 크게 패했다. 화공은 정사에도 있다(황개의 거짓 항복·화선).
연의: 연의 45~49회 — 방통의 연환계, 제갈량이 칠성단에서 동남풍을 빌린 일, 황개의 고육계는 연의 45~49회의 창작이다(전투 패널의 「연의 창작」 참고).
관련: 적벽대전
성도를 차지하고 익주목이 된다.
정사 선주전 건안 19년: 5월 성도를 포위한 지 수십 일 만에 유장이 항복했다.
연의: 연의 65회 — 연의 65회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관련: 유비, 익주를 얻다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베고 한중을 차지한다.
정사 선주전·황충전: 건안 24년 정월 정군산에서 하후연이 죽었다. 조운의 한수 공방은 본전이 아닌 배송지 주 운별전에 있다.
연의: 연의 70~71회 — 연의 70~71회가 같은 싸움을 다룬다.
관련: 정군산 전투와 한수 공방
성도에서 황제에 즉위한다(선주).
정사 선주전: 221년 4월 성도에서 즉위했다. 한이 정식 국호이고 촉한은 후대 이름이다.
연의: 연의 80회 — 연의 80회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관련: 유비, 황제에 오르다
이릉에서 육손의 화공에 대패해 백제성으로 물러난다.
정사 선주전·육손전·오주전: 222년 윤6월 육손이 화공으로 촉한군 영채 수십 곳을 깨뜨렸다.
연의: 연의 83~84회 — 제갈량의 팔진도가 육손을 막았다는 대목(연의 84회)은 정사에 없다.
관련: 이릉 전투, 육손의 화공
백제성(영안)에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맡기고 죽는다.
정사 제갈량전: 영안에서 선주가 '그대의 재주가 조비의 열 배이니 아들이 못나면 그대가 취하라'고 했다. 마속전: 마속을 크게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의: 연의 85회 — 연의 85회가 같은 장면을 다룬다.
관련: 백제성 탁고, 유비의 죽음
정사 후한서 주준전: 남양 황건 장만성이 군수를 죽이고 완에 주둔했고, 뒤를 이은 조홍이 완성에 십여 만으로 웅거했다. 주준이 형주자사 서구·진힐과 합쳐 1만 8천으로 6월부터 8월까지 포위했으나 함락하지 못했다. 토산을 쌓아 성안을 내려다보고 서남을 북으로 치며 동북으로 정예를 올려 성을 넘었다. 연의 2회는 한충이 성을 지키다 항복을 거절하고 유비·관우·장비가 주준을 돕는 것으로 그린다.
연의: 연의 2회
정사 정사에는 호뢰관에서 연합군과 동탁군이 싸운 기록이 없다. 무제기는 원소 등이 산동에서 일어났으나 동탁의 병세가 강해 먼저 진군하는 자가 없었다고 적는다. 화웅을 벤 것은 연의에서 관우(온주참화웅)로 그려지나 정사에서는 손견이 양인에서 화웅을 벤다. 삼영전여포도 정사에 없다.
연의: 연의 5~6회
정사 무제기: 193년 가을 조조가 도겸을 쳐 십여 성을 함락했으나 도겸이 성을 지키며 나오지 않았다. 194년 다시 쳐 다섯 성을 함락하고 동해까지 진출했다가 담 동쪽에서 도겸의 조표·유비에게 막혔으나 이를 깨고 양분을 쳤다. 연의 10~11회는 조조의 부친 조숭 피살을 출병 사유로, 공융·전해의 구원을 더한다.
연의: 연의 10~11회
정사 여포전·무제기: 198년 여포가 다시 원술을 위해 고순을 보내 소패의 유비를 치게 했다. 조조가 하후돈을 보내 구원했으나 고순에게 패했고 유비도 고순에게 패했다. 이 일로 9월 조조가 직접 여포를 정벌했다. 고순은 영문에서 정예 700여 명을 이끌어 함진영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영웅기에 있다.
연의: 연의 14회
정사 무제기·원소전: 200년 2월부터 10월까지 이어졌다. 원소는 정병 10만과 기병 1만으로 허도를 치려 했고, 조조는 관도에 군을 모으고 병력이 1만에 못 미쳐 사상자가 열에 두셋이었다. 원소는 높은 망루와 토산에서 영채에 화살을 쏘았고 조조는 발석거(벽력거)로 이를 부수었다. 원소가 땅굴을 파자 조조는 안에 긴 참호를 팠다. 군량이 모자라던 때 허유가 항복해 순우경의 오소 군량 수송을 알리자 조조는 보기 5천으로 밤에 오소를 급습해 순우경 등을 베었고, 장합·고람이 항복하자 원소군이 무너졌다.
연의: 연의 30~31회
정사 선주전: 유표가 죽고 유종이 항복했으나 유비는 형주 백성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갔다. 당양에 이르렀을 때 무리가 10여만, 치중이 수천 량이었고 하루 십여 리를 갔다. 조조가 양양에서 유비가 지나간 것을 알고 정기 5천으로 하루 밤낮에 300여 리를 달려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 등 수십 기와 달아났다. 장비는 20기로 후미를 맡아 물가 다리를 끊고 맞섰고, 조운은 어린 아들(후주)을 안고 감부인을 지켜 낸다.
연의: 연의 41~42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75 | 정군산에서 하후연을 베고 한중을 얻었으나(219) 이릉에서 대패했다(222, 선주전). |
| 무력 | 73 | 전선에 직접 나선 기록은 있으나 개인 무용은 조운·관우에 비해 적게 전한다(선주전). |
| 지력 | 74 |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얻고 법정의 계책으로 한중을 쳤다(선주전·법정전). |
| 정치 | 78 | 익주 평정 뒤 법정·제갈량과 촉과를 정비했다(법정전). |
| 매력 | 98 | 조조가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뿐'이라 했고(선주전) 관우·장비·조운이 평생 따랐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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