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68년 — 배송지 주 ― 魏書「仁時年五十六」(223년 졸)에서 역산
사망 223년 — 황초 4년(223) — 합비에서 졸, 시호 충후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199년 | 관도 | 광양태수(의랑 겸 독기) | 추정 |
| 206년 | 호관 | 도정후→독기 | 기록 |
| 208년 | 강릉 | 행정남장군 | 추정 |
| 209년 | 강릉 | 행정남장군 | 기록 |
| 215년 | 번성 | 행정남장군(번 주둔) | 추정 |
| 216년 | 번성 | 행정남장군(번 주둔) | 추정 |
| 217년 | 번성 | 행정남장군(번 주둔) | 추정 |
| 218년 | 번성 | 정남장군 | 추정 |
| 219년 | 번성 | 정남장군 | 기록 |
| 220년 | 양양 | 거기장군→대장군→대사마 | 추정 |
| 223년 | 합비 | 대사마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184~189년 | 기타·재야 | (회수·사수 일대 호걸·연대 불명) | 불명 |
| 190~195년 | 위 | 별부사마·여봉교위 | 불명 |
| 196~198년 | 위 | 광양태수(의랑 겸 독기) | 불명 |
| 199년 | 위 | 광양태수(의랑 겸 독기) | 추정 |
| 200~205년 | 위 | 도정후→독기 | 불명 |
| 206년 | 위 | 도정후→독기 | 기록 |
| 207년 | 위 | 도정후→독기 | 불명 |
| 208년 | 위 | 행정남장군 | 추정 |
| 209년 | 위 | 행정남장군 | 기록 |
| 210~214년 | 위 | 안평정후·행정남장군 | 불명 |
| 215~217년 | 위 | 행정남장군(번 주둔) | 추정 |
| 218년 | 위 | 정남장군 | 추정 |
| 219년 | 위 | 정남장군 | 기록 |
| 220년 | 위 | 거기장군→대장군→대사마 | 추정 |
| 221~222년 | 위 | 거기장군→대장군→대사마 | 불명 |
| 223년 | 위 | 대사마 | 기록 |
관도 전 유비가 허 이남의 현들을 충동하자 기병을 이끌고 가 유비를 쫓아내고 모든 현을 되찾는다.
정사 조인전: 원소가 보낸 유비가 소강 일대 현을 부추겨 허 이남이 불안해지자 조인이 기병으로 유비를 쳐 달아나게 했고 반란 현을 모두 되찾았다. 한순을 계락산에서 대파하기도 했다.
연의: 연의 22회
출전: 三國志 卷09 「備新將紹兵未能得其用擊之可破也」 / 三國志 卷09 「仁盡復收諸叛縣而還」
호관 포위 중 "생로를 열어 주어야 한다"고 건의해 성을 항복시킨다.
정사 조인전: 조조가 "성이 함락되면 모두 구덩이에 묻겠다"고 영했으나 몇 달 동안 함락하지 못하자 조인이 살 길을 보여야 한다고 건의했고, 조조가 따라 성이 항복했다.
연의: 연의 해당 없음
관련: 호관 전투
출전: 三國志 卷09 「圍城必示之活門所以开其生路也」 / 三國志 卷09 「城降」
주유 군이 강릉에 이르자 성 밖으로 돌진해 포위된 우금(牛金)을 구한다.
정사 조인전: 주유가 수만 명으로 공격하자 조인이 3백 명을 모아 우금(牛金)에게 맞서 싸우게 했으나 포위되자 직접 말을 타고 해자를 건너 적진을 뚫고 우금을 구해 냈고 진교가 "진짜 천인"이라 탄복했다. 조인은 안평정후로 봉지를 옮겼다.
연의: 연의 50회
출전: 三國志 卷09 「仁径渡沟直前衝入賊圍金等乃得解」 / 三國志 卷09 「將軍真天人也」
번성에서 한수 범람과 관우의 포위를 견디다 서황의 구원으로 포위를 벗는다.
정사 조인전: 관우가 번을 공격할 때 한수가 불어 우금 등 7군이 수몰되었다. 조인은 수천으로 성을 지켰고 성벽 몇 판만 남았으나 "죽을 각오"를 보여 장병이 두 마음이 없었다. 서황이 구원하자 조인은 포위를 뚫고 나왔고 관우는 물러났다.
연의: 연의 73회
출전: 三國志 卷09 「仁激厉將士示以必死將士感之皆無二」 / 三國志 卷09 「徐晃救至水亦稍减晃從外擊羽仁得溃圍出羽退走」
문제가 즉위하자 거기장군·형양익주 도독이 되고, 양양을 점거한 손권 장수 진소를 서황과 쳐 깨뜨린다.
정사 조인전: 문제가 왕위에 오르자 조인을 거기장군·도독형양익주제군사로 삼았고, 손권의 장수 진소가 양양을 차지하자 서황과 함께 쳐 깨뜨려 양양에 들어갔다.
연의: 연의 76회
출전: 三國志 卷09 「仁與徐晃攻破邵遂入襄陽」
오강에 군을 두었다가 합비로 돌아와 황초 4년에 죽는다.
정사 조인전: 대사마가 된 조인이 제군을 거느려 오강에 근거했다가 합비로 돌아와 황초 4년에 졸했다. 시호는 충후.
연의: 연의 68회
출전: 三國志 卷09 「復督諸軍据烏江還屯合肥」
정사 무제기: 업이 함락된 뒤 원담이 감릉·안평·발해·하간을 빼앗자, 조조가 절교 편지를 보내고 진군했다. 원담이 평원을 버리고 남피로 달아났다. 12월 조조가 평원에 들어가 주변 현을 평정했고, 205년 정월 남피를 쳐서 원담을 베고 그 처자를 죽였다. 연의 33회는 한겨울 하천이 얼어 군량선이 움직이지 못하자 백성에게 얼음을 깨게 하는 이야기를 더한다.
연의: 연의 33회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88 | 번성에서 관우에게 수 겹으로 포위되고도 장병들을 독려해 서황이 올 때까지 지켜 냈다(조인전). |
| 무력 | 88 | 강릉에서 주유 군에 포위된 우금을 직접 구하러 돌격해 "장군은 진짜 천인"이라 불렸다(조인전). |
| 지력 | 71 | 호관을 치며 "성에 살 길을 열어 두어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고, 관도 때 유비를 깨고 반란 현을 회복했다(조인전). |
| 정치 | 60 | 군 규율을 문서화해 곁에 두고 안건에 따라 일했다(조인전). |
| 매력 | 63 | "조 대사마의 용맹은 맹분·하육도 못 미친다"는 평이 전한다(배송지 주 ― 傅子).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조인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