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1년의 세계 — 그해 일어난 일
이 해에 사료가 적은 사건 21건을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그해 일어난 일
중국 (4)
- 흉노 호한야 선우가 오원새에 와서 이듬해 정월 조회를 원함 — 한이 빈객의 예로 대하고 지위를 제후왕 위에 둠 (한서(漢書) 제기 漢書卷008 宣帝甘露二年十二月)
- 호한야 선우가 장안에 와서 조회 — 위교에서 만세를 부르고 건장궁에서 연회, 신하를 칭하되 이름은 부르지 않음 (한서(漢書) 제기 漢書卷008 宣帝甘露三年正月)
- 선우가 귀국해 막남 광록성에 거함 — 한이 호송하고 북변에 곡식 지원, 질지 선우는 멀리 달아남 (한서(漢書) 제기 漢書卷008 宣帝甘露三年二月)
- 흉노 호한야 선우가 내조해 번신(藩臣)을 칭하되 이름은 부르지 않게 하고, 관대·의복·황금새·검·활·안거 등 후한 하사를 받음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27 (원문 단락 #2093, -51년))
서아시아 (1)
- 키케로가 킬리키아 속주를 평화롭게 다스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Plut. Cicero 36.2)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16)
- 카르누테스가 마을을 버리고 흩어지자 카이사르가 혹독한 날씨를 피해 케나붐에서 병사를 민가에 숙영시키고 기병·보조병은 적 흔적을 따라 사방에 보냄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5)
- 카이사르가 벨로바키 영역에 진을 치자 벨로바키는 코레우스 지휘하에 암비아니·카레테스 등 연합군을 높은 지대에 모아 대치; 카이사르는 12피트 방벽·두 해자·탑으로 진영을 요새화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7–8.10)
- 코레우스가 보병 6천·기병 1천으로 사료 징발로를 매복하나 포로의 정보로 카이사르가 간파하고 더 많은 군단을 이끌고 나가 전투가 벌어져 코레우스가 전사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17–8.19)
- 패한 벨로바키가 사절을 보내 항복하고 인질을 내놓으며, 콤미우스만은 라비에누스의 암살 시도로 불신해 게르만 쪽으로 도망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21–8.23)
- 가장 호전적인 부족이 꺾이자 카이사르가 군을 나누어 파비우스를 먼 곳으로, 라비에누스를 트레베리 정벌에 보내고 자신은 에부로네스 땅을 칼·불·약탈로 황폐화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24)
- 카니니우스가 피크토네스 땅 리모눔에서 두라키우스가 안데스 지도자 둠나쿠스에게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원하러 향함 — 둠나쿠스가 도리어 카니니우스 진영을 공격하려 함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26)
- 파비우스가 두라키우스를 구하러 오자 둠나쿠스가 루아르강을 건너려 후퇴, 파비우스의 기병 지휘관 바루스가 추격해 교전하고 이어 군단이 나타나자 적이 무너져 대량 살육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27–8.28)
- 세노네스의 드라페스와 카두르키의 루테리우스가 카두르키 땅 우셀로두눔(루테리우스의 옛 속령)을 점령해 저항, 카니니우스가 3개 진영으로 도시를 조여 감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32)
- 안토니우스를 벨로바키에 남기고 카이사르가 직접 여러 부족을 돌며 인질을 거두고, 카르누테스에게서 반란 주모자 구투르바투스의 인도를 받아 처형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38)
- 카이사르가 우셀로두눔에 도착해 이미 포위된 것을 보고, 곡식이 풍부하므로 물 공급을 끊기로 함 — 강이 산을 감싸고 가까운 샘이 있음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8.40)
그 밖의 사건은 지도에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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