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생년 불명 — 생년 불명. 한 5년(-202) 해하 추격 기사에만 나온다
사망 몰년 불명 — 사망 연대 불명(이후 행적이 본문에 없다)
| 연도 | 지명 | 직책 | 근거 |
|---|---|---|---|
| -202년 | 오강 | 낭중기(郎中騎) — 해하 추격 기병 | 기록 |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근거 |
|---|---|---|---|
| -202년 | 한 | 낭중기(郎中騎) — 해하 추격 기병 | 기록 |
| -201~-195년 | 한 | 적천후(赤泉侯) | 불명 |
한 기병으로 항우를 쫓다 항우의 호통에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 몇 리를 물러난다.
정사 항우본기: 동성에서 항우가 기병을 나눠 돌격하며 한 장수를 베자, 적천후(양희)가 기장으로 추격하다 항우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 몇 리를 물러났다. 한서 항적전은 같은 일을 「楊喜為郎騎」로 적어 당시 직책이 낭기임을 알려 준다. 항우본기가 서술 시점의 봉호 적천후로 적었다.
출전: 史記 卷007 「赤泉侯為騎將追項王項王瞋目而叱之赤泉侯人馬俱驚辟易數里與其騎會為三處」 / 漢書 卷031 「楊喜為郎騎追羽羽還叱之喜人馬俱驚辟易數里」
오강에서 자결한 항우의 시신 한 부분을 얻고 적천후에 봉해진다.
정사 항우본기: 항우가 스스로 목을 친 뒤 서로 시신을 차지하려 짓밟아 수십 명이 죽었고, 낭중기 양희·기사마 여마동·낭중 여승·양무가 각각 한 부분을 얻어 다섯 사람이 합쳐 확인했다. 그 땅을 다섯으로 나누어 양희를 적천후에 봉했다. 봉작 연도는 본기에 없어 -202로 본다.
관련: 오강 자결
출전: 史記 卷007 「最其後郎中騎楊喜騎司馬呂馬童郎中呂勝楊武各得其一體」 / 史記 卷007 「封楊喜為赤泉侯」
| 항목 | 전성기 수치 | 근거 |
|---|---|---|
| 통솔 | 50 | 기장·낭기로 추격에 참여했다는 기록뿐이다. |
| 무력 | 66 | 항우의 호통에 놀라 물러난 기록과 시신 일부를 얻은 기록이 있다(항우본기). 값은 추정이다. |
| 지력 | 평가 불가 | 기록이 없다. |
| 정치 | 평가 불가 | 기록이 없다. |
| 매력 | 평가 불가 | 기록이 없다. |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양희의 이동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