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張蒼) — 사기·한서 기준 생애·이동 경로·능력치 근거

한출생 생년 불명사망 몰년 불명기록 연도 3해

생몰

출생 생년 불명 — 출생 기록 없음(양무 사람, 몸이 8척 남짓 컸다는 서술)

사망 몰년 불명 — 사망 연도 이 범위 밖(문제·경제 대) — 승상으로 한 문제 4년(-176)부터 재임(張丞相列傳)

연도별 위치

연도지명직책근거
-207년남양객(패공 휘하)기록
-204년정형대상→조상기록
-202년계(연의 도읍)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기록

근거 칸의 「추정」은 기록에 장소가 직접 적히지 않아 앞뒤 기록으로 정한 위치입니다.

연도별 직책·소속

연도소속직책근거
-209~-208년진진 어사(주하방서) — 죄로 달아남불명
-207년한객(패공 휘하)기록
-206년한상산수추정
-205년한상산수불명
-204년한대상→조상기록
-203년한대상→조상불명
-202년한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기록
-201~-197년한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불명
-196년한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추정
-195년한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불명

나온 사건·전투

-207년 · 객(패공 휘하)

패공이 양무를 지날 때 객으로 따르다 남양 공격 중 죄로 참수당할 처지가 되나 왕릉의 말로 면한다.

정사 장승상열전: 진의 어사로 주하방서를 맡았다가 죄가 있어 달아났다. 패공이 양무를 지날 때 객으로 따라 남양을 쳤고 법을 어겨 참수당할 처지가 되었으나, 왕릉이 몸집을 아깝게 여겨 패공에게 말해 용서받았다.

출전: 史記 卷096 「蒼以客從攻南陽」 / 史記 卷096 「時王陵見而怪其美士乃言沛公赦勿斬」

-206년 · 상산수

한왕을 따라 한중에 들어가고, 장이가 진여에게 쫓겨 한으로 오자 상산수가 된다.

정사 장승상열전: 패공이 한왕이 되자 한중에 들어갔다가 삼진을 평정했다. 진여가 상산왕 장이를 쳐 쫓아내 장이가 한에 귀부하자 한은 장창을 상산수로 삼았다.

출전: 史記 卷096 「陳餘擊走常山王張耳耳歸漢漢乃以張蒼為常山守」

-204년 · 대상→조상

한신을 따라 조를 쳐서 진여를 사로잡고 대상이 된다.

정사 장승상열전: 회음후를 따라 조를 쳐 진여를 얻었고, 조가 평정되자 한왕이 장창을 대상으로 삼아 변경 방비를 맡겼다.

관련: 정형 전투(배수진)

출전: 史記 卷096 「從淮陰侯擊趙蒼得陳餘」 / 史記 卷096 「漢王以蒼為代相備邊寇」

-202년 · 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

대상으로 연왕 장도를 치는 데 따라 공을 세우고, 6년에 북평후에 봉해진다.

정사 장승상열전: 연왕 장도가 반란하자 고조가 가서 쳤고 장창은 대상으로 따라 공을 세워 6년 중에 북평후에 봉해졌다.

출전: 史記 卷096 「蒼以代相從攻臧荼有功以六年中封為北平侯」

-196년 · 대상→북평후→계상→회남상

영포 반란 뒤 황제의 아들 장이 회남왕으로 서자 그의 상이 된다.

정사 장승상열전: 영포가 반란해 망하자 한이 황자 장을 회남왕으로 세웠고 장창이 상이 되었다. 14년에 어사대부로 올랐다.

출전: 史記 卷096 「黥布反亡漢立皇子長為淮南王而張蒼相之」

능력치와 근거

항목전성기 수치근거
통솔50전쟁 지휘 기록은 한신을 따라 조를 치고 대 상으로 연왕 장도를 친 정도다(장승상열전).
무력50무력 기록 없음. 죄로 참수당할 뻔한 일이 있다(장승상열전).
지력86율력·산술에 밝아 계상·주계로 군국 상계를 맡았고 후에 한의 율력 제도의 바탕이 되었다(장승상열전).
정치78상국 소하 밑에서 열후로 상부에서 상계를 맡았고 어사대부·승상에 올랐다(장승상열전).
매력64왕릉이 그의 몸집을 보고 참수를 면하게 해 준 은혜를 평생 아버지처럼 받들었다(장승상열전).

수치는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이 지도에서 매긴 값이며, 근거 기록이 없는 항목은 「평가 불가」로 둡니다.

지도에서 보기 — 장창의 이동 경로

한 소속 다른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