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操가 赤壁에서 劉備와 싸워 불리하고 역병으로 군을 물림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武帝紀 (卷01) 建安13년)
劉備가 荊州 백성 10여 만을 거느리고 當陽에 이르러 曹操에게 長坂에서 크게 패하고 처자를 버리고 달아남 (삼국지(三國志) 정사 蜀書 先主傳 (卷32) 建安13년)
諸葛亮이 孫權과 연결해 周瑜 등 수군 수만이 劉備와 합세, 赤壁에서 曹操를 격파해 배를 불태움 (삼국지(三國志) 정사 蜀書 先主傳 (卷32) 建安13년)
周瑜·程普가 각 1만을 이끌고 劉備와 함께 赤壁에서 曹操를 대파, 曹操는 남은 배를 불사르고 퇴각 (삼국지(三國志) 정사 吳書 吳主傳 (卷47) 建安13년)
赤壁 뒤 孫權이 직접 合肥를 포위하고 한 달 넘게 공격했으나 함락 못하고 張喜의 원군이 오기 전에 물러남 (삼국지(三國志) 정사 吳書 吳主傳 (卷47) 建安13년)
손권이 서쪽으로 황조를 침 — 황조가 몽충 2척으로 면구를 막고 큰 밧줄에 돌을 달아 천 명이 쇠뇌를 쏘자 동습·능통이 결사대 100명씩으로 큰 배를 몰아 몽충 속으로 돌입, 동습이 칼로 밧줄을 끊음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5 (원문 단락 #5272, 208년))
형주 장릉태수 괴월·동조연 부손 등이 유종에게 조조에 항복을 권하며 순역·강약의 큰 틀을 들어 유비로는 조공을 당할 수 없다고 주장함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5 (원문 단락 #5282, 208년))
노숙이 하구에 이르러 조조가 이미 형주로 향한 것을 듣고 밤낮 달려 남군에 이르렀으나 유종은 이미 항복한 뒤 — 유비가 남으로 달아나자 당양 장판에서 만나 손권의 뜻을 전하고 천하 정세를 논함, 유비는 창오태수 오거에게 가려 함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5 (원문 단락 #5289, 2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