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년의 세계 — 그해 일어난 일
이 해에 사료가 적은 사건 19건을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그해 일어난 일
중국 (9)
- 孫權이 夷陵에서 劉備를 격파(曹丕는 7백 리 연영을 병가의 금기라 평함)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文帝紀 (卷02) 黃初3년)
- 孫權이 다시 반하자 曹丕가 許昌에서 남정해 宛에 행차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文帝紀 (卷02) 黃初3년)
- 劉備가 秭歸에서 나아가 夷道 猇亭에 영채를 세움(黃權은 江北 군 감독) (삼국지(三國志) 정사 蜀書 先主傳 (卷32) 章武2년)
- 陸議가 猇亭에서 劉備군을 대파, 馮習·張南 등이 전사 (삼국지(三國志) 정사 蜀書 先主傳 (卷32) 章武2년)
- 劉備가 배를 버리고 육로로 魚復로 돌아와 魚復縣을 永安으로 고침 (삼국지(三國志) 정사 蜀書 先主傳 (卷32) 章武2년)
- 陸遜이 夷陵 일대의 蜀軍 50여 영을 정월부터 윤월까지 대파해 수만 명을 베거나 항복시키고 劉備는 홀로 달아남 (삼국지(三國志) 정사 吳書 吳主傳 (卷47) 黃武1년)
- 魏가 세 길로 침공해 曹眞·夏侯尚 등이 南郡을 포위, 諸葛瑾·潘璋이 구원(洞口·濡須에도 병력) (삼국지(三國志) 정사 吳書 吳主傳 (卷47) 黃武1년)
- 漢軍이 巫峽·建平에서 夷陵 경계까지 진영을 잇대 수십 屯을 세우고, 정월부터 6월까지 吳와 대치해 승부가 나지 않음 (자치통감 卷069 222년 단락8 제1문)
- 吳군이 火攻으로 漢 진영을 불태우고 張南·馮習·胡王 沙摩柯 등을 베어 40여 진영을 깨뜨림 (자치통감 卷069 222년 단락9 제6문)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10)
- 엘라가발루스가 군영(근위대 막사)에서 재위 30개월 만에 죽임을 당했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 Aur. Vict. Caes. 23.3)
- 엘라가발루스가 알렉산데르를 해치려다 근위대 소요 — 병영에서 상자에 숨어 달아나려다 발각되어 18세에 살해, 어머니도 함께 죽고 시신은 끌려다니다 테베레에 던져짐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80(79).20.2)
- 알렉산데르가 곧바로 황제가 되어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에게 근위대와 제국 업무를 맡김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80(80).1.1)
- 엘라가발루스가 군인 소요로 어머니와 함께 살해되었다 (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 Eutr. 8.22)
- 근위대 진영에서 병사들이 알렉산데르만 환호하자 격분한 엘라가발루스가 소란꾼을 벌하려 하자 병사들이 그와 어머니를 죽임. 시신은 시궁에 던져짐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5.8)
- 병사들이 알렉산데르를 황제로 선포해 궁에 들임. 아직 어린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지도 아래 있음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5.8)
- 알렉산데르가 학식 있는 법관과 전쟁 경험 있는 장교로 관직을 채움. 모후가 유혹하는 자를 궁에서 멀리함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6.1)
- 엘라가발루스의 시신이 하수구에 들어가지 않자 추를 달아 아이밀리우스 다리에서 티베리스에 던짐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Heliog. 17.2)
- 3월 노나이 하루 전, 콩코르디아 신전 원로원 회의에서 알렉산데르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음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Alex. Sev. 6.2)
- 엘라가발루스(안토니누스)가 방종으로 로마인들에게 살해되고 알렉산데르가 황제로 선포되었다 (조시모스 새 역사 Zos. 1 (1814 영역)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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